교육과학기술부 고위 간부들이 모교뿐만 아니라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까지 가서 예산 지원을 약속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도연 교과부 장관의 사퇴론이 교육 및 시민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학교 방문이 사실상 장관의 지시로 이뤄진 것인 만큼 간부 몇몇을 문책할 게 아니라 장관 스스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권도 27일 “(장관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 이번에 문제가 된 교과부 실·국장들의 학교 방문은 교과부가 부처 차원에서 마련한 ‘학교 방문 추진계획’에 따라 실시됐다. 학교를 방문하는 고위 간부들에게 특별교부금을 지원하기로 한 것도 김 장관이 주재한 실·국장회의에서 결정됐다. 간부들이 학교에 전달한 예산 지원 증서도 장관 명의로 작성된 것이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김 장관은 자녀 학교를 방문한 간부 2명을 대기발령하는 선에서 사태를 수습하려 해 ‘부하 직원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자기는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행태를 보인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리더십에도 큰 타격을 받게 됐다. 부하 직원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장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기 때문이다. 교과부의 한 중간 간부는 “학교 방문은 실·국장 회의를 통해 결정되고 장관도 독려한 일인데, 비난 여론을 잠재우려고 뒤늦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며 “두 사람만 불쌍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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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를 방문한 간부는 빼고 자녀 학교를 찾아간 간부에 대해서만 인사 조처한 것을 두고서도, ‘꼬리 자르기를 한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모교를 방문한 간부들까지 문책할 경우 역시 모교를 찾아 2천만원을 건넨 장관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모교 예산 지원 사실이 언론에 보도돼 비난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도 교과부는“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발표문을 냈다가 청와대의 강한 질책을 받고 하룻만에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히는 등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김 장관은 자녀 학교를 방문한 간부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사흘이 지나서야 공개해 파문 축소에 급급해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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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교육 및 시민사회 단체들의 김 장관 사퇴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현인철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대변인은 “사실상 ‘공금 횡령’이나 다름없는 일을 부하들에게 지시한 장관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며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 국민 정서를 파악하지 못하는 무능력, 지도력 결핍 등 교과부와 김 장관이 그동안 보여 준 모습에 비춰 볼 때, 장관이 물러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윤숙자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회장도 “자기가 지시해 놓고 책임은 부하들에게 떠넘기기에 급급한 사람은 교육부 수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성명을 내 “취임 초기부터 도덕성 논란과 자질 시비에 휩싸인 사람에게 막중한 교육의 난제들을 맡길 수 없다”며 김 장관의 해임을 요구했다. 참교육 학부모회와 참여연대, 흥사단 등 여섯 단체는 28일 오전 감사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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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민주당 등 야권도 이날 잇따라 논평을 내어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이 다시는 공직에 몸담을 수 없도록 관계 당국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김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