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은 왜 자신과 동료들을 모질게 박해한 박정희·전두환 군사정부 지도자와 그 무리에게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는, 종교적 가르침을 따르는 게 옳다는 믿음이다. 김대중은 1980년대 초반 사형 선고를 받고 투옥됐을 때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기독교 가르침을 여러 번 인용하며 이를 통해 절망적 상황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고 밝혔다. 1980년 11월24일 둘째 아들 홍업씨에게 보낸 편지가 대표적이다. 디제이는 편지에서 “이웃에의 사랑은 하느님의 계명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 사랑하는 데서 어려운 것은, 증오한 자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가능한 길이 있다. 첫째는 나 자신도 죄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남을 용서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증오와 사악으로 괴롭히는 자기 가해의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점이다. 셋째는 용서와 사랑을 거부해선 인간 사회의 진정한 평화와 화해를 성취할 수 없다. 넷째로 용서와 사랑은 진실로 너그러운 강자만이 할 수 있다”고 썼다.
두 번째로, ‘용서는 진실로 너그러운 강자만이 할 수 있다’는 말에서 배어나듯 디제이는 스스로 ‘너그러운 강자’가 되고 싶어했다. 김대중은 생전에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에이브러햄 링컨과 넬슨 만델라를 꼽았다. 두 사람은 정적을 포용하고 정치보복을 하지 않음으로써 국가 분열의 위기를 막고 존경을 받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링컨 대통령은 1861년 미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 내전(남북전쟁)을 감수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엔 통합을 최우선에 두고 국정을 운영했다.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한 장군이 ‘패배한 남부군을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자 링컨은 “그들을 진정시키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런 링컨을 김대중은 “용서의 정치로 승리한 가장 훌륭한 모범”이라고 평가했다. “나를 죽이려 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도 링컨의 영향이었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뷰(1998년 2월24일)에서 밝힌 적이 있다. 1979년 안병무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링컨이 두 번째 대통령 취임식에 임하면서 그 연설 속에서 말한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관용을 베풀라(malice toward none, charity for all)’는 저의 기본 주의(主義)입니다”라는 대목은 시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