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 정치’ 선언과 역사 뒤집기 시도의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이런 행보가 뉴라이트 세계관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이승만 전 대통령 재평가, 친일 전력이 있는 백선엽 장군 ‘띄우기’, 북한과 교류·협력 대신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등도 같은 맥락이다.

윤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자유’, ‘반국가세력’ 등 이념과 적대의 단어로 빼곡하다. 그는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지난달 15일, 광복절 경축사), “제일 중요한 게 이념”(지난달 28일, 국민의힘 연찬회),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이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있다”(지난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 등 때와 장소 구분 없이 이념적 메시지를 쏟아냈다.

이런 접근은 과거 뉴라이트의 인식과 매우 흡사하다. 원래 뉴라이트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1960년대부터 진보적, 탈권위주의적 사회 변화의 반작용 차원에서 확산한 노선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선 주로, 전향한 주사파 등 민족해방(NL) 계열의 운동권 출신을 중심으로 2000년을 전후해 부상했다. 굳게 믿었던 신념을 바꾼 탓에, 이들은 대체로 북한 체제와 그에 우호적인 세력에 매우 부정적·적대적이다. ‘철 지난 이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더 극우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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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취임 때부터 강조해온 ‘자유민주주의’도 뉴라이트 학자들이 이명박 정부 때 공론장에 올려 생명을 얻은 단어다. 뉴라이트 쪽은 ‘자유민주주의’가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이고 우수한 체제이자, 대치 중인 북한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경제 성장을 이루게 한 기틀이라고 주장한다. 2011년 뉴라이트 계열의 한국현대사학회는 이런 논리로, 당시 새로 만드는 초·중·고 역사 교과서에서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로 표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시켰다. 학계에선 “개념이 모호하다” “헌법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비판과 논란이 계속됐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 들어 이 단어는 교과서에서 사라졌으나, 지난해 들어선 새 정부는 2025년 교과서부터 다시 자유민주주의를 사용하기로 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뉴라이트전국연합, 자유주의연대, 시대정신, 바른사회시민회의, 한반도선진화재단 등 전면적인 세력화에 나섰던 뉴라이트는 대부분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고 이후 여의도와 청와대, 경제계 등으로 진입해 승승장구했다. 2012년 총선에서 대거 낙선·낙천했다가 박근혜 정부 때 국정교과서 추진에 ‘다 걸기’ 하며 조직력의 정점을 찍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 때 집단적 세력으로는 힘을 잃었으나, 윤석열 정부에서 요직에 기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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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지난 7월 임기를 시작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과거 뉴라이트 학자들의 싱크탱크인 ‘뉴라이트 싱크넷’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2005년 출범한 뉴라이트 역사단체 ‘교과서포럼’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다.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은 2008년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집필에 참여했고,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의 이배용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던 인사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2004년 동아일보 정치부장 시절 쓴 칼럼에서 “뉴라이트의 문제의식은 급진적인 노선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며 뉴라이트를 보수 정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노동운동가에서 극우 정치인으로 180도 변모해 뉴라이트 진영에서 “뉴라이트의 표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강규형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이사(명지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 때 역사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으로 참여했는데, 과거 홍범도 장군의 소련공산당 활동을 ‘반민족적’이라고 평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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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사는 정부의 반공주의적 정책·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가 통일을 염두에 둔 교류·협력 기능을 삭제하고, 북한 인권 문제에 무게를 무게를 싣는 쪽으로 조직을 개편한 것은 김영호 통일부 장관 기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최근 강행하는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주장을 주도한 것은 박근혜 정부 때 현대사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뉴라이트 계열 나종남 육사 교수다.

지난 3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방식 발표와, 이어진 일본과의 관계 개선 바탕에도 뉴라이트 쪽이 주장해온 식민지 근대화론이 자리 잡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신냉전 구도가 굳어진 국제정세 아래에서 미·일과의 밀착이 불가피하다는 설명만 덧붙이기엔 사회적 합의 과정이 전무한 독단적 결정이었다. ‘반공주의’를 내세우면서 정부를 향한 비판을 싸잡아 매도하는 국가관, 합리적 보수마저 등 돌리게 하는 독단적 행태와 무리한 역사관이 반영된 정책 행보를 보면, 추후 ‘8·15 건국절 주장’이나 역사 교과서 논쟁도 재발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정치학자들은 윤 대통령이 체제 대결에 집중한 국정 운영 행태를 바꿀 가능성이 적어보인다고 짚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정치학)는 한겨레에 “윤 대통령은 강한 우파, 보수적 이념 성향에 기대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결심을 한 것 같다. 뉴라이트가 결집하게 된 배경”이라며 “반공 보수, 수구 쪽 성향을 드러내고 이념 정치를 해나가면서 안팎에서 체제 대결에만 몰두하다 보니 갈등을 유발하는 정치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정치학)는 “윤 대통령의 편향적 이념 과잉과 검찰 등 사정기관 동원을 통한 권위주의적 행태는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더 강력한 독단적 정부 운영을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고 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