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과 유승민. 김무성 의원은 상도동계의 막내로 정치에 입문했고 유승민 의원은 이회창 총재의 참모로 입문했다. 입문 경로와 달리 유 의원은 개혁적 보수 색채가 짙고 김 의원은 훨씬 보수적이다. 그들의 몇 안 되는 공통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스멀스멀 접수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를 돕기 시작한 원조 친박이라는 점. 이제 그들이 27일 새누리당을 떠나면서 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 김무성 의원은 지난달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 만난 걸 후회한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회 재경위원장직을 하는데 하루는 당시 박근혜 대표가 사무총장을 맡아달라고 연락이 왔다. 안 한다고 했는데 그쪽에서 몇 번을 졸라 내가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갔다”고 말했다. ‘정치인생 중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김무성과 유승민. 두 사람이 인간 박근혜와 엮인 ‘잘못된 만남’을 여러 장의 사진과 이야기로 엮어봤다.

2004년 3월 거대야당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간 뒤 곧바로 역풍에 직면했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한나라당 심판”을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1998년 정계에 입문한 박근혜 의원은 탄핵안 가결 11일 뒤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다. 그해 4월 총선에서 절멸의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을 구할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다. 박 대표는 여러번 대국민 사과를 했고 천막당사로 보금자리로 옮긴다. 그리고 4월 총선에서 121석을 얻어 당을 누란의 위기에서 구해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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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동 부동산 등 3건 총 62억원 상당을 누락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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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의원은 이듬해 박근혜 체제 한나라당의 살림살이를 맡는 사무총장이 되면서 그와 인연을 맺었다. 친박 세력이 꾸려지기 시작했고 특유의 보스 기질로 친박의 좌장을 맡았다. 2004년 비례대표 초선이 된 유승민 의원도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으로 영입됐다. 유 의원은 이듬해 비례대표직을 사퇴하고 대구 동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손쉽게 당선됐다. 친박 세력은 이때 유 의원이 박근혜 대표의 큰 은혜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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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 시장이 직접 해명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이 전 시장이 직접 해명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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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구정동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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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명박과 박근혜가 맞붙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은 본선보다 더 치열했다.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 캠프의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아 세몰이에 나섰고, 유승민 의원은 정책메시지단장을 맡아 온몸을 던져 이명박 캠프의 네거티브 공격을 맡고 엠비 검증을 주도했다.

박근혜 캠프의 유승민 의원이 2007년 7월6일 서울 여의도 선대위 사무실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난 96년 공직자 재산신고때 양재동 빌딩 매각대금
박근혜 캠프의 유승민 의원이 2007년 7월6일 서울 여의도 선대위 사무실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난 96년 공직자 재산신고때 양재동 빌딩 매각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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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14일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 최고위원이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와 기자실에서 공천 탈락에 항의해 탈당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던 중 감정이 복받치는 듯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08년 3월14일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 최고위원이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와 기자실에서 공천 탈락에 항의해 탈당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던 중 감정이 복받치는 듯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경선에서 근소하게 패한 박근혜 후보와 친박계는 이듬해 큰 위기를 맞는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으로 당의 주류로 떠오른 엠비계가 19대 총선을 앞두고 친박계 배제에 나선 것이다. 부산 3선이었던 김무성 의원도 공천에서 탈락했고 눈물을 흘리며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공천 탈락자들과 연대체를 구성해 선거운동에 나섰다. 이름하여 ‘친박 무소속 연대’. 주군인 박근혜 의원은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당을 떠나 출마해 당선된 뒤 복당해서 나를 도와달라”며 애끓는 연대감을 과시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무성 의원은 풍찬노숙하며 선거를 치러 다시 당으로 돌아왔지만 이명박 정권에서 김무성-박근혜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다. 박근혜 의원의 ‘윤허’ 없이 김무성 의원이 엠비계가 제안한 원내대표 카드를 받은 게 단초였다.

유승민 의원은 2011년 한나라당이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사건으로 또다시 위기에 처하자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서 박근혜 비대위원장 등극의 발판을 놓았다. 그러나 직언을 싫어하는 박근혜 리더십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유승민 의원과의 관계도 나빠지기 시작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전권을 행사한 2012년 4월 총선에서 김무성 의원은 이제는 친박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천에서 배제됐다. 원조 친박들의 탈박 현상은 일단 2012년 대선 앞에서는 봉합되는 모양새였다.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접전 양상이 이어지자 박근혜 후보는 외유를 떠난 김무성 전 의원을 급히 불러들여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맡겼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김무성과 유승민은 더 이상 박근혜의 전우가 아니었다. 박 대통령의 불통·독단 리더십에 공공연하게 반기를 든 원조 친박 김무성·유승민은 비박계의 대표주자가 돼있었다.

2015년 2월6일
2015년 2월6일

2013년 보궐선거로 다시 국회로 들어온 김무성 의원은 2014년 7월 전당대회에서 소수파로 쪼그라든 친박계의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당대표에 올랐다. 유승민 의원은 2015년 2월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계 이주영 후보를 압도하며 원내 사령탑 자리에 오른다. 비박계 김무성·유승민 2명이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반에 새누리당을 장악한 것이다.

이때부터 유승민 의원은 중도개혁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박근혜 대통령과 위태로운 대립각을 연출한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공박했고 정부가 시행령으로 국회 입법을 왜곡하지 못하게 하는 국회법 처리에 합의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과 행태였지만 박 대통령은 이를 “배신의 정치”라고 공격했다. 최고 권력자의 독기 품은 오더에 새누리당 의원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의총과 최고위 결의 형식으로 유승민 원내대표를 끌어내렸다. 권력자의 표독스런 칼날 앞에 김무성 대표도 저항하지 못했다. 최고위의 유승민 사퇴 권고안을 전달하는, 즉 사약을 들고 가는 악역이 그의 역할이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사퇴하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며 왕정복고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박 대통령과 친박 세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2015년 7월8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최고위의 사퇴 권고를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전달한 뒤 나오고 있다.
2015년 7월8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최고위의 사퇴 권고를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전달한 뒤 나오고 있다.

결국 2016년 4월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박이 장악한 공천관리위원회는 탈당 뒤 후보 등록이 가능한 시점까지 유승민 의원 지역구의 공천을 확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고사 작전에 들어갔다. 시한 직전 유승민 의원은 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김무성 대표는 계파 의원의 자리를 보장받아 ‘공천 학살’의 칼날을 피해갔지만 막판에 ‘진박 공천장’에 도장을 찍지 않는 방식으로 복수에 성공했다. 결국 그들에게 돌아온 건 총선 참패였다.

2016년 3월23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대구 용계동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새누리당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기 위해 도착하며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2016년 3월23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대구 용계동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새누리당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기 위해 도착하며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총선이 끝나고 유승민 의원은 돌아왔지만 쪼그라든 새누리당에서 그와 김무성 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8월 전당대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종교적으로 숭배하는 청와대 수석 출신 이정현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됐고 최고위도 친박이 장악했다. 그리고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가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온힘을 기울였던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옆에 최순실이 있다는 걸 다 알았다”고 했고 유승민 의원은 “최순실이 정윤회 처고 최태민의 딸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박근혜 대통령·국회의원 시절부터 좌지우지 하는 것을 알았다면 제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결국 박근혜 탄핵열차에 함께 몸을 실었다. 그리고 2016년 12월27일 “친박 패권주의 청산”을 주장하며 박 대통령이 만든 새누리당을 떠났다. 10년 넘게 울고 웃으며 이어왔던 박근혜와의 ‘잘못된 만남’은 결국 이렇게 끝이 났다.

박근혜 한나라당
박근혜 한나라당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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