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도시주택공급 점검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도시주택공급 점검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 참패가 예고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 장악력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선거 결과 정권심판론에 쏠린 매서운 민심이 확인된 만큼, ‘독선’, ‘불통’으로 비판받은 국정 운영 기조의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한 상황에 놓였다. 인적 쇄신 등으로 국면 전환을 꾀할 가능성이 높지만 레임덕(권력 누수)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공식 일정을 잡지 않고 용산 한남동 관저에서 선거 개표 상황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압도적인 여소야대 국회에서 임기를 시작한 윤 대통령은 4·10 총선에 모든 걸 걸다시피 했다. 관권 선거 논란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지난 1월4일부터 지난달 26일까지 전국 주요 총선 격전지를 돌며 24차례 민생토론회를 열고 갖가지 지역 개발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권심판론에 불을 댕긴 건 윤 대통령 자신이었다.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이 어물쩍 넘어간 데 이어, 지난달 4일엔 해병대 사망 사고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로 임명했다. 핵심 피의자를 국외로 빼돌리려 한다는 비판이 들끓자 결국 대사 임명 25일 만에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으나 이미 타이밍을 놓친 터였다. 여기에 ‘대파’로 상징되는 물가 폭등 등 민생난이 겹치면서 집권 세력에 대한 민심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광고

여당의 총선 참패로 윤 대통령은 지난 2년보다 더 강력해진 여소야대 국회를 마주하며 정국 주도권을 야권에 내주게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돼야 공약했던 정책을 차질 없이 할 수 있고, 그러지 못하면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이 내걸었던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은 힘을 받지 못할뿐더러, 총선 이전 내놨던 감세 등 각종 공약도 현실화되기 힘들어 보인다. 야당이 별러온 김건희 여사, 해병대 수사 관련 특별검사법 등을 무작정 외면하기에도 큰 부담이 예상된다.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기는커녕 이제껏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도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광고
광고

윤 대통령의 여당 장악력도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 선거 기간 출마자들을 중심으로 ‘용산발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며 윤 대통령의 당내 영향력은 이미 균열이 시작된 상태다. 당내 비윤계 주자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당정 관계 수평화와 국정 기조 변화를 요구할 경우 윤 대통령의 영향력은 급속히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참모진 개편과 개각 등의 타개책을 고심하며 국면 전환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을 두고 장기화한 의-정 갈등에 대한 해법도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국정을 돌아보면서 국민 곁으로 더 다가서는 방안을 일단 고민할 것 같다”고 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