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시절인 2013년 촬영한 것이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시절인 2013년 촬영한 것이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치열한 미-중 경쟁 시대에 한국이 살아남을 길은 ‘초월적 외교’일까요?

오랫동안 문재인 정부의 통일외교 특별 보좌관을 지낸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11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제시한 ‘초월적 외교’란 표현이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문 이사장은 이 인터뷰에서 미국에 ‘몰빵’외교를 전개하는 일본을 향해 “최근 일본 외교는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수동적이고 과도하게 미국에게 의존하고 있다”면서, 신냉전의 시대에 한-일이 공생하기 위한 비책으로 ‘초월적 외교’란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초월적 외교란 생경한 개념은 무엇일까요. 먼저, 문 이사장의 인터뷰 발언을 쭉 소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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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미국 쪽에 서면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담보하는 게 어렵게 된다. 중국은 북한의 지원에 힘을 쏟고, 러시아도 함께 동맹을 강화할 것이다. 최전선에서 대치하는 한국의 안보상 부담이 한 없이 커진다.” “(쿼드 참여와 관련해선) 한국 정부는 ‘특정한 국가를 배제하는 지역 협의체에 참가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따라서 쿼드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대중 견제를 위해 북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여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이 중국 일변도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 시점에서 한국에게 가장 바람직한 길은 모든 국가들과 우호적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미-중 대립이 치열해질 수록 한국의 선택지는 제한될 것이기 때문에 대립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나는 이것을 한국의 살아남을 길로 ‘초월적 외교’라 부른다. (초월적 외교란) 미-중 어느 진영에 속하는 게 아니라 다국간 협력과 지역통합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가운데 미-중의 충돌을 막고 외교적으로 움직일 공간을 확보하는 적극적 외교를 뜻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일이 많은 협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이 사이버 안보분야에서 ‘새로운 논의의 틀을 만들자’고 제창하면 미국도 중국도 귀를 기울이지 않겠는가.” “최근 일본 외교는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수동적이고 과도하게 미국에게 의존하고 있다. 예전에 오히라 마사요시 총리는 ‘환태평양연대구상’을 제창해 이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로 이어졌다. 선진적으로 일본이 국제사회의 ‘어젠더 세팅’을 하는 역할을 짊어졌다. 일본이 미국을 과도하게 편들면, 미-중 신냉전이 더 빨리 고정화 된다. 그렇게 되면 한-일은 모두 안전보장 면에서 부담이 커지고 경제적으로도 큰 손해를 입는다. ‘신냉전’을 막기 위해 한-일이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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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이사장의 발언은 현재 한국이 직면해 있는 ‘외교 현실’을 돌아볼 때 매우 ‘이단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지난 1월20일 출범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현재 미-중 갈등이 이뤄지는 상황이 인류사적으로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운명이 갈리는 ‘변곡점’(infection ponit)이라 보고 중국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을 결집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우리 민주주의 국가들이 힘을 합쳐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의 도전을 이겨내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 12일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인도 4개국 안보 협의체인 ‘쿼드’ 정상회의를 열었고, 한-미-일 3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 이사장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이 “미국 쪽에 서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담보하는 게 어렵”된다며 미-중 양쪽에서 균형을 잡는 ‘초월적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일본이 지금같은 미국 일변도 외교를 펼치면 안 되고, 한국과 힘을 합쳐 미-중 사이에서 중심을 잡을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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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의 11일치 <아사히신문> 인터뷰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의 11일치 <아사히신문> 인터뷰

이에 대해 미국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문 이사장의 견해에 대한 딱 떨어지는 반론은 아니지만, 미국의 저명한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달 22일 한-미 동맹에 대한 보고서 ‘한반도에 대한 CSIS 위원회-한미동맹을 위한 제언’을 발표했습니다. 그 안에 현재 문재인 정부기 취하고 있는 ‘전략적 모호성’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습니다. 이들은 전략적 모호성은 한국의 장기 전략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이들은 한국 정부의 모호한 태도가 미국이 볼 때 ‘한국이 중국에 경사되고 있다’는 오해를 사서 한-미 동맹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두번째, 한-미가 단단히 하나로 묶여 있는 게 아니라는 것(“Washington and Seoul are not one the same page”)을 알게 되면 중국에 대한 한국의 레버리지(영향력)가 사라지게 된다고 예측합니다. 이들은 결국, 중국은 미국의 여러 동맹국 중에 한국을 가장 약한 고리로 인식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016년 12월27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의 진주만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설하고 있다. 뒤쪽 오른편에 1941년 12월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침몰한 미국 전함 애리조나 위에 설치된 기념관이 보인다. 호놀룰루/로이터 연합뉴스
2016년 12월27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의 진주만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설하고 있다. 뒤쪽 오른편에 1941년 12월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침몰한 미국 전함 애리조나 위에 설치된 기념관이 보인다. 호놀룰루/로이터 연합뉴스

문 이사장의 견해에 대한 평가는 실로 다양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일이 힘을 합쳐 대립으로 치닫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일본은 2010년대 초 중국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을 겪은 뒤, 미-일 동맹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이를 위해 2014년 7월 일본의 헌법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길을 텄고, 2015년 4월 미-일 방위협력 지침을 개정하고 9월 관련된 일본 법령을 제·개정했습니다. 물론 최근 미-중 대립이 생각보다 한층 더 격렬해 지면서, 일본 내에서도 지금과 같은 미국 일변도 외교 노선이 옳은 것인지 회의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이번 인터뷰도 그런 일본 사회 내 흐름 속에서 기획된 게 아닌가 추정합니다). 하지만, ‘미-일 동맹을 강화에 중국에 대항한다’는 일본의 전략적 결정이 다소 완화될 순 있어도 근본적으로 바뀌긴 어렵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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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대한민국 현대사는 문 이사장처럼 ‘우리가 우리 힘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과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잘 살펴, 그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의 역사’라 정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거칠게 나눠 볼 때 전자는 대한민국의 독립은 연합군의 공도 컸지만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흘린 피가 일궈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김구·여운형·김규식의 길입니다. 이들은 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정당한 우리 몫을 찾기 위해 통일된 독립국가를 수립하려 애썼습니다.

후자는 대한민국의 독립은 연합군의 승리 덕이라 생각했고, 그 '엄연한 현실'을 재빨리 받아들였습니다. 냉전의 원심력을 날카롭게 포착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38선 이하 남한이라도 빨리 독립 정부를 꾸려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1946년 6월 그 유명한 ‘정읍 연설’은 이런 현실적 고뇌의 산물이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48년 4월 조국 분단을 막기 위해 남북협상에 나서는 김규식을 “대세에 몽매하다는 조소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혹평했습니다. 이들은 냉전 질서에 순응했고, 조국의 분단을 받아들였습니다. 조국 통일은 먼저 단독 정부를 세운 뒤 힘을 키워 상대를 ‘소청’(쓸어 없앤다)하는 방식을 통해 이루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 직접적 결과가 6·25였습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후자가 주도해 온 역사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성장과 번영을 가져온 이른바 ‘보수 주류’입니다. 이들은 미국과 일본에 의지해 경제를 개발하고, 한-미 동맹에 안보를 기대는 방식으로 대한민국을 지금과 같은 나라로 키워냈습니다.

그러는 사이 한국 사회엔 우리도 이제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세워 과감히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꿈꾸는 이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일련의 흐름 속에 김대중의 '햇볕정책', 노무현의 '한반도 균형자론', 문재인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정인 이사장의 ‘초월적 외교’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또다른 버전이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초월적 외교는 한국 사회의 주류적 개념으로 성장해 다수의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대미 정책에 대한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의 불만이 임계점에 달해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도무지 화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이 심연과 같은 견해 차이가 지난 70여년 간 대한민국을 둘로 갈라온 가장 살벌한 전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참고문헌 <26일 동안의 광복>(길윤형·서해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