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가 남긴 극심한 혼란과 분열 위에서 조 바이든이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오전 11시52분(현지시각) 워싱턴 의사당 앞에 마련된 연단에서 전 세계를 향해 21분에 걸친 취임사를 낭독했습니다.

이날 취임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호소한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서로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갈기갈기 찢긴 미국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겠다는 ‘단합’의 메시지, 두번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로 상처 입은 주요국들을 달래겠다는 ‘동맹 재건’의 필요성이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동맹을 회복하고, 다시 한 번 세계와 관여하겠다. 우리는 단순히 힘을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모범을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세계를) 이끌어 가겠다. 우리는 평화·진보·안전을 위한 강하고 신뢰받는 동반자가 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평소 지론이라 밝혀 온 ‘동맹중시 노선’을 미국 외교 정책의 1순위에 놓고 실천해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희망하는 한국인들이 가장 주목하는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가 앞으로 내놓게 될 대북 정책입니다. 아쉽게도,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반도를 따로 언급하진 않았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어떤 대북 정책을 취하게 될지 힌트를 얻으려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의 19일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 언급을 살펴봐야 합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북핵 관련 질문이 나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대중정책과 대중동정책 등 다른 현안에 밀려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지진 못했습니다. 북핵 문제에 대해 질의한 것은 에드 마키 상원의원(민주당) 한 사람뿐으로 문답이 오간 시간은 4시간에 걸친 전체 청문회 시간 중 3~4분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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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지명자가 19일(현지시각)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지명자가 19일(현지시각)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럼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의 발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먼저, 마키 의원은 블링컨 지명자에게 북한의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검증된 동결’과 ‘제재 완화’를 교환하는 ‘단계적 합의’라는 생각을 지지하는지 묻습니다. 마키 의원이 언급한 ‘검증된 동결’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려면 한-미 그리고 북-미 사이에 굉장히 긴 토론을 벌여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했던 그간 북핵 협상의 역사를 떠올려 볼 때, 이 용어를 정의하는 단계에서 회담은 결렬될지도 모릅니다. 일단 여기선 이 난제에 대한 논의를 건너뛰고, 블링컨 지명자의 답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블링컨 지명자는 즉답을 피한 뒤 다음과 같은 원칙론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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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북한에 대해 취한 전적인 접근과 정책을 재검토(review)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재검토할 생각이다. 왜나면, 이는 여러 행정부를 고통스럽게 한 어려운 문제이고, 이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 더 나빠졌다. 나는 이 문제가 시작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려 하고, 반기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옵션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하는 측면에서 압력을 강화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아니면 다른 외교적 접근법도 가능한지 재검토하고 상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동맹과 파트너들 특히 한국, 일본, 다른 나라들과 모든 방안들을 검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이 발언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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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제 막 집권한 바이든 행정부에 북핵 문제 해결은 최우선 순위에 있는 현안이 아닙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래 패권을 두고 갈등 중인 중국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냐는 난제에 대처해야 합니다. 바이든 행정부 주요 인사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FOIP)의 큰 틀은 계승하면서도,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코로나19나 기후 변동에 대한 대응과 같은 글로벌 과제에는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그다음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시절 직접 개입했던 ‘이란 핵협정’ 등 중동 정책을 새로 짜야 합니다. 바이든 행정부에 전임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 파기한 ‘이란 핵협정’은 되살려야 할 중요한 유산이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나름 성과를 거뒀던 북핵 문제는 거추장스러운 애물단지일 뿐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 점을 유의하면서, 북핵 문제가 미국의 최우선 외교 과제가 될 수 있도록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야 합니다.

둘째, 블링컨 지명자는 자신들이 북핵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상의할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 다른 긍정적 언급은 북한이 대화에 나오도록 ‘압박을 강화’하는 강경책뿐 아니라, 또 다른 외교적 선택지가 있는지도 살펴보겠다고 밝힌 점입니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남긴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합의’를 북-미 대화의 시작점으로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이지만, 한국과 상의한다고 했으니, 한국 정부의 주장을 진지하게 경청할 것입니다. 앞으로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이 자신의 대화 상대인 블링컨 지명자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얼마나 생산적인 소통을 해나갈지 주목해야 합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21일 오전 종로구 도렴 빌딩 사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21일 오전 종로구 도렴 빌딩 사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셋째, 블링컨 지명자는 대북 정책을 확정하는 데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도 상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8년 초 시작된 1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2019년 2월28일 ‘하노이 노딜’을 통해 사실상 멈춰 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재팬 패싱’을 우려한 일본이 매우 부정적인 역할을 해왔음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 등을 통해 이미 낱낱이 공개됐습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하루 종일 골프를 치는 등 수시로 트럼프 대통령과 소통해 가며, “북한에 섣부른 양보를 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주입했습니다. 일본이 이런 자세를 보인 것은 북한에 대한 한-일 간의 화해하기 힘든 ‘전략적 시각차’ 때문이지만, 이 시기 양국 관계가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돼 서로 허심탄회한 의사소통의 기회가 없었던 탓도 큽니다. 한국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자고 아무리 열심히 미국을 설득해도, 일본이 완강히 반대하면, 미국도 쉽게 결심하기 힘듭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제1동맹은 누가 뭐래도 일본이고, 한국은 그 뒤를 잇는 제2동맹입니다.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북-미 대화를 촉진해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만들기 위해선 미국뿐 아니라 일본을 포섭해야 합니다. 나아가 중국과도 긴밀히 협력해야 합니다.

이런 점들을 두루 살펴본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근 방식은 트럼프 식의 양자 대화를 통한 ‘톱-다운’이 아닌 한·중·일 등 관련국과도 적극 협력하는 ‘바텀-업’ 방식의 다자 대화가 아닐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임기 종료를 1년 4개월 앞둔 문재인 정부는 이 어렵고 힘든 고차원 방정식을 풀어낼 수 있을까요? 전망이 밝다고 할 순 없겠지만,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