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3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미테구청 앞에서 구청의 ‘평화의 소녀상’ 철거명령에 항의하는 시위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10월13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미테구청 앞에서 구청의 ‘평화의 소녀상’ 철거명령에 항의하는 시위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독일 베를린시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압박 성명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받아쳤다.

21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집권 자민당 의원 82명이 소녀상 철거 방침을 지지하는 내용의 성명을 지난 18일 미테구청장과 미테구의회 의장에게 보냈다. 이나다 도모미 전 방위상과 다카토리 슈이치 중의원 의원 등이 중심이 된 성명에서 이들은 소녀상이 “예술 작품 또는 전시 성폭력 피해자 일반에 대한 표현이 아니며 일본만을 표적으로 해, 일본의 존엄성을 일방적으로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테구가 일방적인 정치적 지지를 표명했다는 인상을 주고 일본과 독일 사이의 우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22일 “우리 정부는 제3국내 소녀상과 관련하여 엄연한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추모·교육을 위해 민간에서 자발 설치한 조형물을 인위적으로 철거하고자 관여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본 스스로도 밝힌 책임 통감과 사죄 반성의 정신에도 역행하는 행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줄곧 이 문제와 관련해 보여온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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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구 도심에 세워진 소녀상은 지난 7월 구청 쪽 허가를 받아 9월 말 설치됐다. 하지만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이 직접 나서는 등 일본 정부의 철거 압박이 이어지자 미테구청은 소녀상 설치 9일 만인 지난달 7일 소녀상 철거 명령을 내렸다.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는 베를린 행정법원에 소녀상 철거명령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냈고, 미테구는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며 철거를 보류한 상태다. 이번 성명은 일본 의원들이 대거 나서 소녀상 철거 공세에 무게를 더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쪽에서는 이달 들어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 등이 잇따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예방하며 한-일 관계 개선에 공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양국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년 7월 도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매개로 협력의 실마리를 잡아보려는 심산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본은 여전히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무력화할 한국 정부의 조처를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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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엔 주한 일본대사관 쪽이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일본 정부가 조만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요청하면 정보 공개를 비롯해 환경 영향 관련 공동조사에 응할 방침이라지만 방류 결정 자체는 협의할 뜻이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얼어붙은 한-일 관계는 이대로 겨울을 맞을 모양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