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레포르토보 구치소. AFP 연합뉴스
모스크바 레포르토보 구치소.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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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탈북자 지원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이 올해 초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구금되어 있다고 러시아 관영언론이 11일 공개했다. 한국인이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은 처음인데, 한러관계의 위기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한국 국민 백아무개씨가 올해 초 러시아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돼 구금됐으며, 2월 말 모스크바로 이송돼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구금돼 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백씨는 국가 기밀 정보를 외국 정보기관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형사 사건 자료가 ‘일급기밀’로 분류됐다고 통신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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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씨에게 적용된 간첩 혐의의 구체적 내용 등은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최근 악화된 한러관계,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 등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국이 서방 주도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자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고, 지난해부터는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 협력에 나서면서 양국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이를 공개한 시점도 미묘하다. 백씨는 올해 1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체포됐으며 러시아는 이를 한국 정부에 알리지 않다가 지난달 문서로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이런 사건은 당사자의 신변 안전을 위해 비공개로 협의가 진행된다. 그런데 러시아가 이를 관영언론을 통해 수면 위로 올린 것이다. 러시아가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을 매우 민감하게 여기며 경고를 해온 상황에서, 최근 한국 일각에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목소리가 나오는 데 대한 압박 성격이 있을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백씨의) 체포 사실을 인지한 직후부터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한러 양국간 외교 채널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며 구체적 내용은 현재 조사 중인 사안이어서 언급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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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하게 밀착하고 있는 북러 관계도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체포된 백씨는 선교사로 러시아 극동 지역과 중국 등을 오가며 북한 탈북민과 노동자 등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1월 중국에서 육로로 블라디보스토크로 입국한 뒤 며칠 뒤 체포됐다고 한다. 그의 아내도 체포됐으나 풀려나 현재는 한국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부터 북한과 밀착하고 있는 러시아가 탈북민 문제에서 북한 쪽 입장에 훨씬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한국인들의 활동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려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여러명의 외국인들이 러시아 당국에 간첩 혐의 등으로 체포되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모스크바 특파원 에반 게르시코비치는 지난해 3월30일 간첩 혐의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체포됐다. 러시아 당국은 그가 러시아군에 대한 거짓 정보를 퍼뜨렸다며 기소했다. 지난달에는 미국과 러시아 이중국적자인 여성이 반역죄 혐의로 체포되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