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의 오하이오급 잠수함 테네시가 모항으로 귀항하는 모습. 트라이던트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전략핵잠수함(SSBN)이다. 미국 해군 누리집 갈무리
미국 해군의 오하이오급 잠수함 테네시가 모항으로 귀항하는 모습. 트라이던트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전략핵잠수함(SSBN)이다. 미국 해군 누리집 갈무리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공식화한 ‘새로운 핵잠수함 개발 구상’은 한반도 정세에 작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핵잠수함 개발을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다. 김 위원장이 “설계 연구가 끝나 최종심사 단계에 있다”고 밝힌 것을 보면, 북한의 핵잠수함 개발이 조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북한의 핵잠수함 개발 움직임은 남한에서도 “우리도 핵잠수함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에서 핵잠수함 개발 주장은 북한의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개발에 자극받아 제기됐다가 물밑에 가라앉아 있는 상태지만, 이번에 다시 힘을 얻을 공산이 커졌다. 남북 간 군사적 대결구도와 군비경쟁이 커질 개연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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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N이냐, SSBN냐

북한이 핵잠수함 개발과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진 않아 어떤 종류의 핵잠수함을 개발하겠다는 것인지 당장 가늠하긴 어려워 보인다. 김 위원장은 단순히 ‘핵잠수함 설계연구’라고 말했지만, 통상 핵잠수함엔 공격핵잠수함(SSN·Submersible Ship Nuclear)과 전략핵잠수함(SSBN·Submersible Ship Ballistic Missile Nuclear) 등 두 종류가 있다. 공격핵잠수함은 추진 동력만 핵(원자력)이고 무장은 재래식 무기인 핵추진잠수함인 반면, 전략핵잠수함은 추진 동력과 무장이 모두 핵으로 이뤄져 있다. 김 위원장은 공격핵잠수함과 전략핵잠수함, 둘 중 어떤 핵잠수함을 개발하겠다는 것인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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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노동신문>이 이번 당대회에서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를 보유할 데 대한 과업이 상정됐다”고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를 구별해 보도한 것을 보면, 김 위원장의 핵잠수함이 전략핵잠수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그동안 핵타격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사실도 핵무장 능력이 있는 전략핵잠수함 개발 쪽에 무게를 두게 한다. 김 위원장은 2019년 12월 노동당 중앙위 7기 5차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전략무기라고 하면 통상 전략핵잠수함을 가리킨다.

미국, 러시아 등 핵보유국은 통상 이른바 3대 핵전력(nuclear triad)을 구축해 놓고 있다. 미국을 예로 들면, 지상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미니트맨-Ⅲ’가 배치돼 있으며, 공중에는 B-52H, B-2A 전략폭격기가 핵미사일과 핵폭탄을 탑재하고 떠 있다. 또 바다 깊은 곳에선 영화 ‘크림슨 타이드’에 나온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이 ‘트라이던트-Ⅱ’ 핵미사일로 무장하고 작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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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핵잠수함 보유 현황
각국의 핵잠수함 보유 현황

핵전력국들이 3대 핵전력을 구축하는 것은 핵무기의 투발 수단이 다양할수록 적의 선제공격에도 핵무기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은 핵무기로 보복 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핵 억제력의 핵심 요소인 것이다. 특히 전략핵잠수함은 장기간 바다 위로 떠오르지 않아도 되는 등 은밀성이 뛰어나 적의 선제공격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가장 큰 전력으로 꼽힌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그동안 공언한 대로 정말 미국과 핵대결을 불사할 각오라면 전략핵잠수함 개발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 수 있다.

재래식 잠수함이 연안 작전용이라면, 핵잠수함은 원양 작전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수중 전략무기이다. 강력한 원자로를 동력 삼아 빠르고 멀리 오랫동안 바다 밑을 누비며 적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군 잠수함 함장 출신인 문근식 예비역 대령은 <왜 핵추진잠수함인가>라는 책에서 “핵추진잠수함은 디젤 잠수함보다 월등한 은밀성과 기동성을 갖추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에게 비수를 들이대는 유일한 무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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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잠수함의 이런 원양 작전능력을 살려 멀리 괌이나 하와이 주변 해역까지 몰래 들어가 핵미사일로 기습 타격한다면 미국에도 큰 위협이 될 것이다. 또 한반도 해역을 벗어나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장기간 한반도 해역 바다 밑에 숨어 있다가 기습적으로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8일 평양에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4일차 회의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사진은 이날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발언하는 모습이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8일 평양에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4일차 회의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사진은 이날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발언하는 모습이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에 핵잠수함 건조 능력은 있나

북한이 핵잠수함 개발 능력을 갖췄는지는 당장 확언하기 어렵다. 북한이 그동안 옛소련에서 들여온 재래식 디젤 엔진 로미오급(배수량 1800t) 잠수함을 핵심 전력으로 운용했으나, 근래 신형 잠수함 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10년대 중반엔 탄도미사일발사관 1기를 탑재한 신형 신포급 잠수함(배수량 2000t급)을 건조했고, 최근엔 3000t급 잠수함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관측도 잇따르고 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2019년 7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새로 건조된 잠수함을 시찰했다고 보도하며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지난해 8월엔 정경두 당시 국방부 장관이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의 잠수함 개발과 관련해 “기존에 운용하던 로미오급 잠수함을 성능 개량하는 부분과 신형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고 북한의 잠수함 개발 노력을 평가했다.

그러나 핵잠수함 개발은 어떨까. 세계에서 운영되는 핵잠수함 중에는 미국의 오하이오급처럼 배수량 1만t이 훌쩍 넘는 대형 전략핵잠수함도 있지만, 프랑스의 뤼비급처럼 배수량 2700t급인 공격핵잠수함도 있다. 북한이 그동안 잠수함 건조 경험이나 기술 등에 비춰볼 때, 소규모 핵잠수함의 선체를 건조하는 건 극복 못 할 장벽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잠수함의 수직발사관에서 탄도미사일(SLBM)을 쏘는 기술은 개발 중에 있다. 북한은 2016년 8월 신포급 잠수함에서 북극성-1형(추정 사거리 1300㎞)을 시험 발사했고, 2019년 10월엔 북극성-3형(추정 사거리 2000㎞)을 수중발사대에서 쏘는 시험을 했다. 또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5돌 기념 열병식에선 새로운 ‘북극성-4ㅅ’(시옷)을 공개했다. 북한이 이들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할 기술을 확보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그러나 갈수록 북한이 핵탄두의 소형·경량화 기술을 확보했을 것으로 믿는 전문가가 느는 것도 사실이어서,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개발하더라도 더는 놀랄 일이 아닌 상황이다.

지난 9일 북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토론과 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당 규약 개정이 이뤄졌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사진은 박봉주 당 부위원장(왼쪽부터),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은 당 위원장,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김덕훈 내각총리가 조선노동당 대표증을 들고 있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9일 북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토론과 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당 규약 개정이 이뤄졌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사진은 박봉주 당 부위원장(왼쪽부터),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은 당 위원장,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김덕훈 내각총리가 조선노동당 대표증을 들고 있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문제는 핵잠수함의 동력원인 소형 원자로와 원전 기술이다. 북한은 우라늄 광산이 풍부하고 원심분리기 등 농축 설비를 갖추고 있어, 연료인 농축 우라늄의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등의 문제에서 국제사회의 제약에 얽매일 리도 없다. 북한은 2003년 1월 조지 부시 행정부와의 2차 북핵 위기 때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뒤 복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잠수함용 소형 원자로를 제작할 수 있을지엔 의문이 제기된다. 원전과 관련해 북한은 1986년 옛소련이 공급한 5㎿ 흑연감속로 등을 운용해 본 경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5년 체결된 9·19 핵합의가 파기되며 외부에서 경수로를 공급받을 길이 막히자 독자 기술로 경수로 건설을 추진했다. 북한은 2010년 11월 지그문트 헤커 등 스탠포드대팀을 영변 핵단지로 초청해 100㎿ 실험용 경수로 건설 현장을 보여주면서 “2012년 말 가동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아직도 정상 가동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대형 원자로 개발 기술도 부족한 북한이 과연 잠수함에 들어갈 소형 원자로를 개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배경이다.

그러나 전력 생산용 원자로 기술 확보가 핵잠수함 개발에 반드시 선행해야 할 조건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미국도 민수용 원전기술을 완성하기 전에 핵잠수함을 만든 전례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첫 핵추진잠수함 노틸러스는 1955년 1월 시험 항해에 성공했으나, 전력 생산용 원자로와 원전은 이보다 2년여 늦은 1957년 12월 펜실베이니아 쉬핑포트에서 첫 상업 운전에 들어갔다.

북한과 미국의 기술 수준을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북한도 그동안 6차례 핵실험을 감행하며 풍부한 핵 관련 경험을 쌓은 만큼 잠수함용 소형 원자로를 제작할 능력이 없다고 단언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또 체제의 특성상 북한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공개 발언은 반드시 이행해야 할 지상과제이다. 북한이 어떤 수를 써서라도 김 위원장의 ‘핵잠수함 개발’ 공언을 달성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러려면 북한이 만만치 않은 기술적 장벽들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도 변함 없는 사실이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