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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북한 만수대예술단 소속 무용수 조명애와 가수 이효리가 함께 출연한 삼성전자 휴대전화 애니콜 광고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2005년 북한 만수대예술단 소속 무용수 조명애와 가수 이효리가 함께 출연한 삼성전자 휴대전화 애니콜 광고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참 오랜만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모든 관계가 끊겼던 남과 북 사이에 새해부터 훈풍이 불고 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호재입니다. 1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자 2일에는 우리 정부가 고위급 회담을 제안했습니다. 3일에는 북한의 평창 올림픽 대표단 파견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2016년 2월을 마지막으로 끊겼던 판문점 연락 채널이 복원됐습니다. 지난 9년간 남북관계는 계속 뒷걸음질 쳤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98년~2007년 사이 활발했던 경제협력과 민간 교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하나씩 줄다가 완전히 멈췄습니다.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폐쇄가 그 정점입니다. 북한의 선 비핵화를 요구하며 대북 압박·제재에 앞장섰지만 남북관계 개선, 북핵 문제 해결 모두 실패한 모양새입니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평창 올림픽 같은 문화·스포츠 분야 민간교류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민간교류는 불충분한 당국 간 의사소통을 보완할 수 있고 그 자체로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해 한반도 긴장 완화의 상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남과 북 사이에 완연한 ‘해빙기’가 찾아오길 바라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지워버린 남북 민간교류 명장면을 정리했습니다. 1. 그땐 승용차를 타고 금강산 관광 갔다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 북쪽 금강산 관광길에 나선 관광객들이 2008년 3월17일 오후 금강산 외금강호텔로 들어오고 있다. 이날부터 시작한 승용차 이용 금강산 관광에는 승용차 17대에 45명의 관광객이 신청했다. 금강산/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 북쪽 금강산 관광길에 나선 관광객들이 2008년 3월17일 오후 금강산 외금강호텔로 들어오고 있다. 이날부터 시작한 승용차 이용 금강산 관광에는 승용차 17대에 45명의 관광객이 신청했다. 금강산/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998년 11월18일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6년6개월여 만인 2005년 6월7일 ‘관광객 100만명 시대’를 맞았습니다. 북한군에 의한 관광객 총격 사망 사건으로 이명박 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기 직전인 2008년 7월에는 누적 관광객이 196만명에 달했습니다.
1998년 11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금강산 관광에 나선 관광객들이 구룡폭포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북한 관광안내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1998년 11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금강산 관광에 나선 관광객들이 구룡폭포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북한 관광안내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구룡연, 만물상, 삼일포 등에 한정됐던 관광 코스는 해금강, 내금강 코스가 추가되면서 다양해졌고, 관광 방식도 점차 확대됐습니다. 해로관광(2004년 중단)으로 시작해 2003년 육로관광이 허용됐고 2008년 3월부터는 관광객이 직접 자신의 차를 끌고 비무장지대를 통과해 금강산으로 가는 길도 열렸습니다. 야영장·해수욕장 등도 개방돼, 관광객들이 금강산을 올려다보며 수영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주말에 금강산 놀러 갈까” 물어보는 게 어색하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북핵 위기 속에서 취소율이 컸던 금강산 관광은 2006년 10월15일 현재 취소율이 18%로 떨어지며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2016년 10월15일 낮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들이 단풍이 한창인 만물상 천선대에 오르기 위해 등산로 철게단을 줄지어 오르고 있다. 금강산/강재훈선임기자 khan@hani.co.kr
북핵 위기 속에서 취소율이 컸던 금강산 관광은 2006년 10월15일 현재 취소율이 18%로 떨어지며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2016년 10월15일 낮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들이 단풍이 한창인 만물상 천선대에 오르기 위해 등산로 철게단을 줄지어 오르고 있다. 금강산/강재훈선임기자 khan@hani.co.kr
2007년 7월26일 여름방학을 맞아 경기 안산시 송호초등학교 학생들이 수려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장전의 금강산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07년 7월26일 여름방학을 맞아 경기 안산시 송호초등학교 학생들이 수려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장전의 금강산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유엔(UN)은 냉전 시대 “관광은 평화로 가는 여권(Tourism is a passport to peace)”이라는 표어 아래 그 중요성을 강조했었는데요. 금강산 관광이 좋은 예였습니다. 올해로 금강산 관광은 중단 10년째를 맞습니다. 금강산 관광 개발사업자인 현대아산은 지난해까지 모두 1조700억여원에 이르는 매출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 사이 임직원은 1084명에서 175명으로 줄었습니다.
2. 그땐 개성에서 선죽교를 직접 봤다
개성 관광 개시 첫 날인 2007년 12월5일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피살되었던 선죽교를 관광객들이 해설원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개성 관광 개시 첫 날인 2007년 12월5일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피살되었던 선죽교를 관광객들이 해설원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금강산만큼 인기 있던 북한 관광지는 ‘고려 오백년 도읍지’ 개성시였습니다. 서울 북쪽 80㎞ 거리에 있는 개성에는 고려 충신 정몽주가 피습당한 선죽교와 금강산 구룡폭포, 설악산 대승폭포와 함께 조선 3대 폭포로 손꼽히는 박연폭포 등 볼거리가 많습니다. 주요 관광지가 시가지 안에 몰려 있어 북한 주민들의 삶을 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혔습니다.
개성 관광 첫날인 2007년 12월5일 오전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이 수속을 밟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개성 관광 첫날인 2007년 12월5일 오전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이 수속을 밟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05년 8~9월 세 차례 시범관광 뒤 2007년 12월5일 본격적으로 시작된 ‘당일치기’ 개성 관광은 두 달 새 1만7000여명이 다녀갔고요. 열 달 열흘 만에 관광객 10만명을 넘겼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지역 관광객들을 위해 울산역, 부산역 등에서 출발하는 ‘개성관광열차’가 운행된 적도 있습니다. 임진강역에서 내려 전용 차량으로 갈아타고 개성으로 이동하는 식이었습니다.
개성을 찾은 남측 관광객들이 2008년 7월25일 개성의 명승지 선죽교에서 북측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개성/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개성을 찾은 남측 관광객들이 2008년 7월25일 개성의 명승지 선죽교에서 북측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개성/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개성 관광은 1주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2008년 11월28일을 마지막으로 중단됐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9개월 만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무시, 김태영 당시 합창의장의 대북 선제타격 발언 등이 이어지자 북한은 개성 경협협의사무소 폐쇄, 개성공단 체류 인력 축소, 개성관광 중단 등의 내용을 담은 ‘12·1 조치’로 맞대응했습니다. 남북간 불신과 갈등의 악순환이 시작된 겁니다.
3. 그땐 젝스키스·핑클이 평양에서 공연했다
1999년 12월5일 평
1999년 12월5일 평
1세대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와 핑클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평양에서 공연한 가수들이라는 점입니다. 1999년 12월5일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열린 ‘2000년 평화친선음악회'(SBS 녹화 방송)는 분단 이후 남한 대중가수가 북한에서 노래를 부른 첫 공연이었는데요. 북쪽에서는 노래 ‘휘파람’으로 유명한 전혜영과 인민배우 등이 나왔고 남쪽에서는 패티김·태진아·설운도·최진희·젝스키스·핑클 등이 나왔습니다. 가수들의 소감도 남달랐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젝스키스 멤버들은 “평양에서 행동하거나 말하는 것이 생각보다 자유분방했다. 공연에서도 분위기는 다소 무거웠으나 노래를 부른 뒤 기립박수를 받을 때는 한없이 기뻤다”고 말했습니다.
이 음악회를 시작으로 한동안 지상파 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방북공연을 추진했습니다. 2002년에는 MBC가 주최한 가수 이미자와 윤도현 밴드의 공연이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렸는데요. 특히 윤도현 밴드의 공연 ‘오! 통일 코리아’는 유일무이하게 남한과 북한 전역에 동시 생중계됐습니다. 윤도현씨는 당시 공연에서 북한 관객들을 향해 당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너무 뜻 깊은 공연에 참여하게 돼서 너무 기쁘다.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가슴이 벅차다. 처음으로 이곳에 와서 우리 음악이 조금 듣기 생소하고 다소 시끄럽게 들릴 수 있지만,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말아 달라. 우린 같은 한민족이고… (객석 웃음·박수) 이곳 말로 ‘놀새떼’(남한의 오렌지족과 비슷한 뜻을 가진 북한말)라고 생각하시고… (객석 웃음) 귀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박수, 호응 많이 해주시면 더욱더 열심히 공연하겠다.”

방북공연 관련 일로 북한을 30여 차례 다녀오고 2005년 ‘조용필 평양 콘서트’를 기획하기도 한 오기현 에스비에스(SBS) 피디는 2015년 <한겨레> 인터뷰에서 “북한 사회에 굉장한 충격을 가해 북쪽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남쪽 가수가 윤도현씨”라고 전했습니다.
[%%IMAGE12%%] 이 밖에도 신화, 베이비복스, 김연자 등이 북한에서 공연했고, 2003년 8월11일 KBS ‘전국노래자랑 평양편’이 평양모란봉공원평화정 앞 야외무대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4. 그땐 북한 응원단원이 이효리와 광고를 찍었다
“명애씨는 너무 고와요”, “효리 동무도 고왔는데, 머리도 물감 들이고(염색하고)….” 2005년 9월12~13일 중국 상하이에서 삼성전자 휴대전화 애니콜 광고 ‘하나의 울림’편 촬영이 진행됐습니다. 광고의 주인공은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가수 이효리씨와 북한 만수대예술단 소속 무용수 조명애씨. 조씨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북쪽 응원단으로 와 큰 관심을 받은 인물로, 이른바 ‘북한 미녀 응원단’을 대표하는 얼굴이었습니다.
광고는 두 사람의 어색한 첫 만남으로 시작합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냐”는 이효리의 질문에 조씨가 “81년생”이라고 답하자 이씨는 “나는 79년생, 내가 언니네”라며 반색합니다. 광고의 백미는 두 사람이 함께 오른 콘서트 무대. 손을 맞잡고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라고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 뒤로 대형 한반도기가 펼쳐지는데요. 분단 체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재회하기 쉽지 않은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최근 이 광고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평창 올림픽에 북한 대표단 파견이 가시화되면서 북한 응원단 방문 여부도 관심을 끌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처음으로 300명 규모의 응원단을 보냈고,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도 응원단을 보냈습니다.
조명애씨 외에 북한 응원단으로 유명세를 치른 사람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씨입니다. 1989년생으로 알려진 그는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청년학생협력단으로 참가해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고 세 차례 공연을 한 바 있습니다.
5. 그땐 평양에서 뉴스를 생중계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뒤 전용기 트랩을 내려와, 직접 마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 손을 맞잡은 채 환하게 웃고 있다. 평양/청와대사진기자단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뒤 전용기 트랩을 내려와, 직접 마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 손을 맞잡은 채 환하게 웃고 있다. 평양/청와대사진기자단
2000년 6월13일 오전 10시38분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손을 붙잡았습니다. 분단 55년 만에 남북 정상이 만난 역사적인 이 순간을 남쪽에서도 1초의 지체 없이 티브이로 볼 수 있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 평양 착륙 15분 전에 미리 도착한 합동방송단이 오전 10시 25분부터 곧바로 생중계에 들어간 덕분입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국내 방송사가 평양에서 생중계한 최초의 사례입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남쪽에서 들고 간 이동용 위성지구국 장비인 SNG(satellite news gathering)와 무궁화위성 3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보도를 종합하면, 남쪽 카메라 기자가 북쪽 중계차를 이용해 촬영한 화면을 일단 북쪽 전송방식에서 우리 쪽 방식으로 변환된 뒤 SNG를 통해 무궁화 위성으로 보냈습니다. 위성은 이를 서울 광장동 위성지구국으로 보냈고, 이어서 한국통신 국제티브이센터(ITC)에 도착한 화면은 국내 방송사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프레스센터로 중계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만남을 생중계로 볼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2일 낮 평양시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처음으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2일 낮 평양시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처음으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07년 10월2일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북 과정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생중계됐습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육로로 이동했기 때문에 동선을 따라가는 촬영이 많았습니다. 국내 방송사들은 합동 중계차 15대와 헬기 2개를 동원해 청와대, 광화문, 강변북로, 자유로, 통일대교, 도라산, 통문 등 방북단이 지나가는 순간을 생중계했습니다. 오전 9시5분 노 전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어선 뒤 잠시 끊어졌던 생중계는 12시께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나는 순간 재개됐습니다.
2007년 10월2일 남북정상 회담이 열린 2일 서울역을 찾은 시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도착 모습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007년 10월2일 남북정상 회담이 열린 2일 서울역을 찾은 시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도착 모습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7년 사이 달라진 점도 있었습니다. 일단 카메라가 아날로그였던 2000년과 달리 2007년에는 처음으로 에이치디(HD)가 동원됐습니다. 보다 선명한 화질로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또 2000년에는 북쪽에서 국내 방송사의 직접적인 송출을 막았지만 2007년에는 남쪽 중계차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문헌 ‘남북관계 개선 방안”(코리아연구원 현안진단 제306호),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금강산 관광 16주년의 의미와 과제’, 현대경제연구원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