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4일 밤 청와대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4일 밤 청와대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한-미 두나라 정상이 새해 첫 통화에서 연례 연합군사훈련 연기에 전격 합의하면서,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를 대화국면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판문점 남북 연락채널 복원과 함께 당국회담을 준비 중인 남북관계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4일 청와대 설명을 종합하면, 미국 쪽 요청에 따라 이뤄진 이날 통화에서 두 정상은 평창 올림픽이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개최되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두 정상은 올림픽 기간 중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양국군이 올림픽 안전 보장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통상 매년 2~4월 열렸던 ‘키리졸브연습·독수리훈련’은 4월 이후에나 실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2월19일 미국 <엔비시>(NBC)와 한 인터뷰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평창 올림픽 뒤로 연기할 것을 미국에 제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는 이날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 이후 추진 중인 남북 고위급 당국회담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대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점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또 이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의할 것임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압박 속에 남북대화가 이뤄질 경우, 자칫 한-미공조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긴밀한 협의없이 진행되는 남북대화는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 인식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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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가 연합훈련 중단을 결정하면서, 북한의 추가적인 핵·미사일 도발이 없는 한 적어도 3월 말까지는 한반도에서 평화 무드가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11월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하고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한 상태다. 이런 상황이 ‘올림픽 휴전’(2월2일~3월25일)까지 이어진다면, 자연스레 중국과 러시아가 북핵 해법의 하나로 주장해온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 상황이 연출된다.

이날 두 정상이 연합훈련 연기의 명분으로 ‘안전하고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내건 것도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합훈련 연기가 ‘쌍중단’을 위한 사전조처가 아니라, 평화 올림픽을 만들기 위한 ‘동맹의 자발적인 결정’이란 점을 강조하려 했다는 얘기다. 한-미 두나라는 그간 합법적인 연합 군사훈련과 불법적인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맞바꿀 순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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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확고하고 강력한 입장을 견지해 온 것이 남북대화로 이어지는데 도움이 됐다고 사의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통화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남북회담에 대해 “좋은 일”이라며 올린 내용과 닮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많은 실패한 ‘전문가’들이 참견을 했지만, 내가 북한에 대해 총체적인 ‘힘’을 행사하겠다는 강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밝히지 않았다면, 지금 남한과 북한 사이에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었겠느냐”고 강조했다.

정인환 이본영 성연철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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