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위기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국민 과반과 야 3당이 격하게 반대하는데도 기어코 한국-일본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체결을 강행했다. 국방부가 10월27일 지소미아 재추진 방침을 밝힌 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은, 외교안보 부처 관계자들조차 고개를 설레설래 흔들 정도의 ‘전격전’이다.
대외정책 측면에서 한·일 지소미아 체결은, 지난해 말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한·일 합의(12·28 합의), 7월8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주한미군 배치 결정과 엮어서 봐야 그 의미 맥락이 분명해진다. 12·28 합의→사드 배치 결정→한·일 지소미아 체결엔 공통점이 있다. 첫째, 한·미 동맹이 미·일 동맹의 ‘종속 동맹’화 하는 추세의 가속화다. 둘째, 동북아에서 한국의 입지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세 사안이 박 대통령의 ‘독단’으로 결정됐다는 점이다. 특히 세 사안 모두 추진 속도와 시점을 주무부처가 아닌 박 대통령의 ‘찍어누르기’로 결정해 그 배경을 두고 뒷말이 많다.
우선 12·28 합의는,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강화의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미국의 ‘압력’이 작용했다. 예컨대 북한의 4차 핵실험 다음 날인 1월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박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12·28 합의를 “정의로운 결과”라 치켜세우곤 “북한 핵실험이라는 공동의 도전에 대한 한·미·일 간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사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측면에서도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어서, 한·일 정부가 2014년 4월부터 국장급 협의 채널을 가동해온 터다. 하지만 2015년 12월28일 합의 타결은 전적으로 박 대통령의 독단적 결정이었다. 주무장관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석달만 시간 여유를 주면 개선된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한겨레> 22일치 1면 참조)
‘사드 배치’ 결정은, 미국의 글로벌 미사일방어(MD)망에 한국을 끌고 들어가는 견인차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정상이 공동성명에서 “역내 국가의 전략안전이익을 크게 해쳐 반대한다”(6월25일)고 한 데서 드러나듯, 동북아 전략균형을 뒤흔들 중대 사안이다. 하지만 이 결정 또한 적어도 시점(7월8일)에 관한 한 박 대통령의 ‘찍어누르기’가 아니라면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주무 장관인 한민구 국방장관은 사드 배치 방침 발표(7월8일) 며칠 전까지도 “아직 정해진 게 없다”(7월5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거나 “올해 안으로는 결론이 날 것”(6월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라며 ‘협의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취지로 답한 터다.
한·일 지소미아는,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의 ‘막힌 혈관’인 한·일 군사협력을 본격화할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와중에 불거진 한·일 지소미아 재추진 ‘속도전’도 박 대통령의 ‘찍어누르기’를 빼고는 설명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한겨레> 17일치 1면 참조)이라는 증언이 잇따를뿐더러, 외교부는 지소미아 체결 과정에서 관여를 최소화하려 애쓰는 등 사실상 발을 빼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 전직 고위 인사는 “외교안보적 측면만 보자면,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상황이 유동적이어서 사드 배치와 지소미아 추진 속도를 오히려 늦춰야 할 상황”이라며 “박 대통령이 외교안보 문제로 부러 갈등을 야기하려는 것 같다”고 짚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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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사드·한일 군사협정 속도전 모두 ‘박대통령 독단’
셋 다 한·미동맹의 ‘미·일동맹 종속’ 가속화
주무부처 아닌 박대통령 ‘찍어누르기’로 결정
박대통령 독단적 태도 배경 두고 뒷말 무성
기자이제훈
- 수정 2019-10-19 11:23
- 등록 2016-11-23 1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