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대북전단)가 다시금 남북관계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10~11월 상황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북한 고위층 3인방의 남쪽 방문으로 남북대화에 훈풍이 부는 듯했지만, 대북전단 살포 문제로 2차 고위급 접촉이 좌초되면서 남북관계가 다시 얼어붙은 바 있다.
북한은 남북대화 재개의 전제로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하며 대남 압박 강도를 점점 높이고 있다. 북한은 7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진정으로 북남(남북)관계에서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올 생각이 있는가, 아니면 삐라(전단) 살포와 같은 대결소동에 계속 매달릴 작정인가”라며 정부의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남쪽의 반응에 따라 남북대화 재개 여부를 결정지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정부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일관되게 내세워온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바꿔서는 안 되지만, 모처럼 찾아온 남북대화 재개의 호기를 놓쳐서도 안 된다는 난처함이 정부 대응에 묻어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나와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한 정부의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주민들의 안전, 내부 갈등 이런 것들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그런 것에 대해서는 필요하다면 적절한 조처를 취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제기한 ‘남북관계 개선’ 차원에서 대북전단 살포에 개입하지는 않겠지만, ‘안전’을 명분으로 해서는 북이 원하는 전단 살포 제지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일종의 ‘고육지책’이자 ‘절충’인 셈이다.
류 장관의 언급 직후, 통일부 당국자는 국내 탈북자단체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암살 계획을 담은 영화 <인터뷰>의 디브이디(DVD)를 대북전단과 함께 북한에 살포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과 관련해, 이를 제지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이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 디브이디를 공개적으로 (북한에) 날린다고 한다면 북도 강하게 위협하고 지역 주민도 (살포 단체에) 항의하는 등 신변 안전 위협 가능성이 클 것으로 생각한다”며 “정부도 이에 맞춰 신변 안전 조처를 취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디브이디를 날리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다. 북한도 올해 남북대화의 물꼬를 틀 필요가 있기 때문에 지난해와는 달리 남쪽 정부의 대응을 ‘미흡하지만 일정한 성의를 보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대화에 응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한켠에선 정부가 북에 굴복해선 안 된다는 보수층의 눈치를 보다가 ‘타협의 묘’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해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날 외통위에서 “대북전단 살포 행위는 남북관계 개선과 큰 관계가 없다”는 류 장관의 언급에 대해 “통일부 장관으로서 기본 지식과 업무 자세가 결여돼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게 (대북 메시지로서) 맞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