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연합뉴스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연합뉴스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북-미 회담 주요 고빗사위마다 한반도 평화와 대화의 물꼬를 틀어막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는 남북 화해에 재를 뿌리려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 일치하는 미국 초강경 매파의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볼턴은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북-미 비핵화 회담에 관해 처음부터 지극히 부정적인 태도를 숨기지 않는다. 회고록에서 그는 “모든 외교적 춤판은 한국이 만든 것이었고, 이는 김정은이나 우리의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의제에 더 연관된 것이었다”라고 썼다. 북-미 관계 개선 자체가 미국의 전략에 부합하지 않은 데다, 의제 자체도 문 대통령에게 선점당했다는 불쾌한 시각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북한이 절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행동 대 행동 방식의 접근은 소용없다는 야치 쇼타로 당시 일본 국가안보국장의 시각과 자신의 시각이 비슷했다고 기술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며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미 3차 정상회담을 권유한 것에 관해 “내가 나중에 한-미 정상 통화를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이라고 하자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사우디에서 대화를 듣던 중 심장마비가 왔다’고 답했다”고 적었다. 남북, 북-미 대화 자체에 냉소적이며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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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전 보좌관이 여러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무산시키려 적극적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전 북-미 선발대 접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들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 방미 전에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트위터에 올리도록 건의했다”라고 적었다. 그의 계획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고 하면서 실제 이뤄지진 않았다.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뒤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을 무산시키려는 그의 시도는 이어졌다. 볼턴 전 보좌관은 “김정은이 2018년 8월부터 연애편지라고 불리는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 ‘곧 만나자’고 제의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을 서둘렀다. 9월에는 김정은을 백악관에 초청하려 했다”라면서 “나는 트럼프에게 ‘하찮은 나라 독재자가 쓴 편지이며, 그가 폼페이오 (국무장관)를 만날 때까지 당신(트럼프)과 만날 자격이 없다’라고 말했다”고 썼다. 이어 “하지만 트럼프는 ‘당신은 왜 그렇게 적대감이 많으냐’며 폼페이오에게 11월 중간선거 뒤 김정은을 만날 테니 전화를 걸어 요청하라’고 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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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는 데도 볼턴 전 보좌관은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우선 그는 스티븐 비건 당시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과 협상 끝에 마련한 합의문 초안을 보이콧했다. 그는 “나는 비건 대표가 만든 합의문 초안을 보이콧했다”라며 “하노이로 가는 중에 후커 보좌관에게 초안을 받았다. 미국 쪽의 사전 양보만 열거한 채 대가로 북한 쪽으로부터는 모호한 비핵화 성명만 넣은 것이었다. (나는) 펜스 부통령과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 등에게 연락해 이를 채택하지 못하게 사전 작업까지 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국무부 협상팀이 합의에 대한 열의와 홍보에 너무 도취해 통제 불능에 빠졌다”고 평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상장을 박차고 나올 수도 있다는 선택지도 미리 주입했다. 그는 “나는 하노이에서 예기치 못한 양보를 막기 위해, 레이건 대통령이 (1986년 소련 고르바초프와의) 레이캬비크 회담에서 회담장을 박차고 나온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썼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영상을 본 뒤 ‘내가 유리한 입장이니 서둘 필요가 없다. 회담장을 걸어나갈 수 있다’고 말해 나는 크게 안도했다”라고 덧붙였다. 북-미 합의가 이뤄질까봐 조마조마했다는 심정을 노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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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 연합뉴스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 연합뉴스

나아가 볼턴 전 보좌관은 북-미 회담장에서도 “북한 핵미사일과 탄도미사일, 생화학 무기 전부에 대한 기본적인 신고부터 필요하다”라고 끼어들며 어깃장을 놨다. 사전 합의에 없던 탄도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신고 요구는 회담이 결렬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결국 당시 러시아 스캔들로 인한 코언 청문회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전 보좌관의 ‘바람’대로 회담을 결렬시켰다. 볼턴 전 보좌관은 회담 전에도 핵 포기 뒤 정권이 붕괴한 리비아 모델을 거론하며 북한의 거부감을 자극해 회담 자체를 무산시키려 했다.

회고록을 본 한 청와대 관계자는 “볼턴이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 구실을 한 것이 회고록을 통해 드러났다. 왜 문 대통령이 정상 간 톱 다운 방식을 강조했는지 알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