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 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앞서 행방불명인 묘역에 들러 헌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 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앞서 행방불명인 묘역에 들러 헌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의 4·3 희생자 추념사 열쇳말은 이념을 넘어선 화해와 평화, 인권이었다. 역사의 비극을 직시하되 더는 우리 안에서 ‘색깔’을 씌워서 반목하지 말고 화합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다.

문 대통령은 3일, 취임 뒤 첫번째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이 땅에 봄은 있느냐”는 제주도민의 한 서린 물음으로 추념사를 시작했다. 그는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당했다”며 4·3의 비극을 정의했다. 1948년 4·3 당시 토벌대는 ‘제주 해안에서 5㎞ 이상 떨어진 지역에 통행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총살에 처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하고 무수한 양민들을 희생시켰다.

문 대통령은 해방과 남·북 단독정부 수립,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이념의 시대’에 휩쓸려 희생된 제주도민들이 오히려 먼저 화해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나라 전체의 화합을 강조했다. 그는 “좌와 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들과 제주도민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넘었다”며 4·3 당시 토벌대인 군경에게 총상을 당했음에도 한국전쟁에 해병대에 입대한 고 오창기씨와, 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학살로 잃고도 군에 지원한 고 김태생씨의 사례를 들었다. 문 대통령은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다”며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또 2013년 4·3유족회와 제주경우회가 조건 없는 화해를 하고, 제주 하귀리에 호국영령비와 4·3 희생자 위령비를 한자리에 모은 위령단이 있다는 사실을 들며 “제주도민들이 시작한 화해의 손길은 이제 전국민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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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이념의 잣대로 4·3을 폄훼하려는 시도를 경계했다. 문 대통령은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난다”며 “우리 스스로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하고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호소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날 “제주 4·3 추념식이 열리는 4월3일은 좌익 무장폭동이 개시된 날”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 또한 이념이 아니라 ‘정의’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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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역대 민주정부가 해온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4·3 진상규명특별법 제정과 사과를 언급하면서 “그 토대 위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이라며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추념사를 마쳤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추념사에서 ‘4·3’에 별도의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다. ‘양민학살’과 ‘무장봉기’ 등의 주장이 맞서며 역사적으로 정확한 규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겠다는 생각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에서 4·3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확한 이름이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