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국가 출발 선언’은 기존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값싼 발전단가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개발도상국형 에너지 정책에서, 환경과 국민의 생명권을 중시하는 선진국형 청정에너지 정책으로의 전환을 천명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부산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내놓은 핵심 메시지는 ‘안전’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발생한 경주 대지진을 언급하며 우리나라가 더는 지진안전지대가 아님을 강조했다. 특히 고리원전 반경 30㎞ 안에 382만명의 주민이 밀집해 살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우리나라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후쿠시마 사태보다 더 참혹한 비극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가 기념사에서 “안전한 대한민국은 세월호 아이들과 맺은 굳은 약속”이라며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선박 운항 선령을 연장한 세월호와 같다”고 힘주어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이와 함께 “탈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수만년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 후손들을 위해 지금 시작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과거의 에너지 정책으로 회귀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대선 후보 시절의 공약을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신규 원전 전면 중단 및 건설 계획 백지화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 즉각 폐쇄 △신고리 5, 6호기 공사 중단, 월성 1호기 폐쇄 등을 약속한 바 있다. 대통령은 지난해 말 원전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를 관람한 뒤에도 “(고리 원전이 가까이 있는) 부산 시민에게는 머리맡에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하나를 놔두고 사는 것과 같다. 판도라(원전) 뚜껑을 열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판도라 상자 자체를 치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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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탈원전은 연구자가 없어서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새 정부가 출범한 뒤 고리 1호기 원전이 닫힌 데 이어 이번 연설에서 에너지 정책 전환을 선언하고 탈원전 의지를 밝힌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이제는 구체적으로 탈원전 로드맵을 세우는 단계”라며 “선진국은 에너지 전력 소비를 줄이고 있다. 우리와 산업구조가 달라 평면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앞으로 우리도 에너지의 효율적 소비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의지는 기존에 청와대 경제수석실 산하 산업정책비서관이 전담했던 원전 정책을 사회수석실 기후환경비서관도 함께하는 ‘협력과제’로 맡긴 것에서도 드러난다. 에너지드림센터장 출신이자 녹색연합의 창립 멤버인 김혜애 기후환경비서관은 산업자원부에서 오랫동안 에너지 정책을 맡아온 채희봉 산업정책비서관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본래 한수원 쪽에선 고리 1호기 원전 폐쇄와 관련해 (원전의 가치를 강조하는) ‘아름다운 퇴역식’ 콘셉트를 잡았는데, 청와대에서 탈핵·에너지 정책의 전환점을 이야기하면서 확 바뀌었다”며 “문 대통령은 탈원전 의지가 확고하고 준비도 오래 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유경 이정애 기자 ed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