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통령 선거전이 이번주 공식 개막되면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언행'이 막판 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칠 변수가 될 것인지 관심사이다.
"참여정부 정책이 공격받을 때는 시시비비를 가리고 의견을 얘기하겠다"는 것이 청와대 입장인데다 본격적 선거운동 과정에서 참여정부 심판 논쟁이 가열될 전망인 만큼 노 대통령의 대응이 예상될 수 있고 `삼성비자금 특검법' 거부권 행사 여부, BBK 검찰 수사에 대한 노 대통령의 입장도 `잠재된 뇌관'으로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일단 표면적으로 노 대통령의 스탠스는 `로 키'(low key)로 잡혀 있는 듯 하다.
이번주 노 대통령의 동선(動線)도 이전과 비교해서 현저히 줄어들 조짐이다. 노 대통령은 이번주 지방행사 참석 일정을 일체 잡지 않았고, 대부분의 공식 일정도 청와대 본관에서 이뤄지는 외부 인사 접견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달 동안 혁신도시 기공식을 비롯, 각종 지방행사 참석이 많았고 매주 한차례 이상 지방 일정이 잡혀 있었던 데 비춰볼 때 두드러지는 변화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5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외부 행사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고 특별히 일정을 줄이라는 지침은 없었다"며 "과거에도 12월에는 외부 행사가 많이 줄어드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번주 지방 일정은 없는 상태"라며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은 토지보상이 50% 이상 이뤄져 기공식을 해야 하는 곳은 모두 끝난 상태이고, 이번주는 내부 일정 중심으로 짜여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지방 행사 일정을 잡지 않은 것에 특별히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지만, 대선 선거운동기간 `선거 개입' 등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한 고려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실제 선거법 86조(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금지) 5항은 `선거기간 중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시행하는 사업 중 즉시 공사를 진행하지 아니할 사업의 기공식을 거행하는 행위'는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선거운동 기간 지방 행사 참석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없지만, 대통령의 기공식이나 착공식 행사 참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최근 들어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도 상당히 절제해왔다. 이번 대선의 초미의 이슈로 부상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닫았고, 최근 논란이 됐던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합당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했다.
대선 판세를 바꿀 수도 있는 이슈인 BBK 사건의 경우 정치권이 모두 검찰 수사의 향방, 발표 시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터라, 검찰 수사 지휘권을 포괄적으로 가진 노 대통령의 의중도 당연히 관심사이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24일 합천 해인사 법회 축사에서 BBK를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절차로 가든 간에 뭘 덮어버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며, 덮어버리고 갈 수 없고 그럴 힘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언급한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실제로 지난 1997년 10월 대선을 앞두고 검찰은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 총재의 비자금 고발 사건 수사를 "대선 후로 유보한다"고 발표했고,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 유보 지시를 자신이 직접 내렸다고 술회한 바 있다. 임기말 대통령의 대선 영향력을 보여준 셈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YS 정권시절 `대통령과 검찰'의 관계에 비유하며 노 대통령의 검찰 수사 관여 여부를 추측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한다.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게 노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라며 "이번 건도 검찰이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노 대통령이 대선 정국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결정은 `삼성비자금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이다. 여야 정치권의 특검법 추진에 따라 노 대통령으로서는 거부권 행사 여부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청와대는 "이번주 중 입장을 밝히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만약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대선 정국에 또 다른 파란을 낳을 수도 있다.
이 법을 주도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비롯, 범여권과 대립을 초래할 수 있고 대선 이슈와 전선을 변화시킬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기홍 기자 sgh@yna.co.kr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