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반민족 인사 묘소의 국립묘지 퇴출을 주장한 김원웅 광복회장의 광복절 75주년 기념사를 계기로 ‘친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김 회장이 거론한 인사들의 행적에 대해선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보수세력이 ‘국부’로 추앙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48년 제헌의회가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제정해 구성한 ‘반민특위’를 상대로 한 ‘우익 테러’를 방조했고, 사실상 반민특위를 해체해 친일 청산을 가로막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회장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겨냥해 “친일파와 결탁했다”고 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1940년대 들어 일제가 세운 만주국을 기리는 ‘만주환상곡’을 작곡·지휘하는 등 친일 행각을 벌였다. ‘만주환상곡’은 애국가의 모태가 된 ‘한국환상곡’의 선율과 겹쳐 국가(나라의 상징 노래)를 새로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 바 있다.
김 회장은 서울·대전의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반민족 인사를 69명 꼽았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기준으로 하면 조선인 무장세력을 탄압·살해한 간도특설대나 일본군 장교 출신 등 12명의 친일·반민족 인사가 묻혀 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선 김홍걸·권칠승·전용기 의원이 이들 12명의 유해를 현충원에서 옮겨야 한다는 내용의 국립묘지법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이를 주장하거나 당론으로 채택한 상황은 아니다.
정치권의 공방은 사흘째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김원웅 회장은 17일에도 한국방송(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이 전 대통령은) 미국 이익을 챙긴 사람이지 건국 대통령, 이런 말을 붙이기 부끄러운 사람이다” “민족 반역자를 국립묘지에 안장한 나라가 대한민국밖에 없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미래통합당은 김 회장의 발언이 ‘편 가르기’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역사의 아픔만 긁어모아 국민 분열의 불쏘시개로 삼는 선동가를 이번에도 침묵의 동조로 그냥 넘기실 것인지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며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최형두 통합당 원내대변인도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친일파이고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 선생도 친일파라면 대한민국은 태어났으면 안 될 나라였느냐”고 따졌다.
민주당은 이 문제와 관련해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지만 당권 주자들은 ‘광복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했다’는 분위기다. 이낙연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광복회장으로서는 그런 정도의 문제의식은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부겸 전 의원도 이날 오전 기자들을 만나 “광복회장이 광복절 계기를 맞아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주민 의원은 지난 15일 김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김원웅) 회장의 광복절 축사를 깊이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의원은 “개개의 발언에는 논의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고, 김 전 의원은 “표현에서 국민 통합 관점을 조금 더 고려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정환봉 노현웅 기자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