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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국회·정당

제2, 제3 신지예 계속 나오면 우리 정치 얼마나 재밌을까

등록 :2018-10-28 09:32수정 :2018-11-10 15:59

[토요판] 요조·오은의 요즘은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신지예 덕분에 재밌었던 시장 선거
안희정 무죄, 디지털 성범죄 등
분노할 이야기만 넘치는 세상
꿋꿋하게 바꿔갈 ‘신지예의 재미’




지난 19일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서울 중구 을지로 ‘오늘공작소’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를 하던 중 환하게 웃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19일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서울 중구 을지로 ‘오늘공작소’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를 하던 중 환하게 웃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나는 이 글에서 ‘재미’라는 단어를 열심히 써보려고 한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는 신지예 덕에 정말 재미있었다. 30대 중반까지 서울에서 쭉 살았던 내 기억에는 서울시장 후보로 그만큼 어린 여성을 본 적이 없었다. 선거사무실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라고 이름 짓는 사람도 처음 봤고, 선거사무실 안에서 노래방에서나 보던 미러볼이 돌아가는 것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여성의 목소리를 이토록 적확하게 대변하고 공감하는 사람도, 그토록 끈질기게 선거 포스터에서 눈에 구멍이 뚫리고 얼굴이 찢겨나가는 후보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신나고 두근거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프고 화도 나는 재미. 선거를 지켜보면서 처음 느껴보는 복잡하고 깊은 재미였다.

모든 정당에서 신지예가 나온다면 어떨까. 더불어민주당에서, 자유한국당에서, 정의당에서, 각각의 정당에서 각각의 신지예가 나온다면 우리 정치는 얼마나 흥미진진한 재미 속에 놓이게 될까. 그리고 그것은 이 나라를 어떻게 바꾸어놓을까.

지난 19일 서울 중구 ‘오늘공작소’ 사무실에서 가수 요조(오른쪽)씨가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19일 서울 중구 ‘오늘공작소’ 사무실에서 가수 요조(오른쪽)씨가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홍길동처럼

“우와, 감사합니다.”

지난 19일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신지예는 어쩐지 다소 피곤하고 수척해 보였는데 알고 보니 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세마리 고양이의 집사라는 것을 알고 선물로 고양이 간식을 사들고 갔는데 그럴 줄 알았으면 비타민이라도 준비할걸 그랬다. 고양이 간식들을 건네주면서 “몸은 괜찮냐”고 물었다.

“오전에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왔는데요. 몸이 안 좋아서 횡설수설했어요.”

―실은 저도 오늘이 첫 공식 인터뷰여서요. 무지 우왕좌왕할 거예요.

“다행이에요. 저 혼자 그런 게 아니어서.”(웃음)

인터뷰는 신지예가 대표로 있는 ‘오늘공작소’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그는 23살에 이곳에서 ‘50만원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일본 니혼대학교 교수이자 발명가 후지무라 야스유키의 책 <3만엔 비즈니스, 적게 일하고 더 행복하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한국에 맞게 재구성한 프로젝트다. 50만원은 상징적인 액수다. 자신의 필요 소득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맞는 일을 찾아가면서 삶을 주체적으로 디자인하는 과정이자 질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은 어느 정도인지,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데에 우리의 한번뿐인 시간을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인지.

―‘오늘공작소’에는 모두 몇분이 일하고 계신가요?

“저까지 다섯인데요. 저는 아마도 ‘새 일’ 때문에 올해 안에 활동을 정리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는 1990년생이다. 28살.

2012년 녹색당에 가입하여 후원당원으로 활동하다가 2015년 녹색당 서울특별시당 대의원으로 추첨(녹색당은 추첨제로 대의원 선정)되었다.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비례대표 5번으로 출마했고, 2016년 10월부터 서울특별시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6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그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내걸고 역대 최연소 서울시장 후보가 되었다. 총선 4개월여 만인 최근에는 당에서 ‘새 일’을 맡았다. 지난 10월8~12일 치러진 선거에서 그는 하승수 후보와 함께 녹색당 제5기 공동운영위원장(녹색당은 ‘여성 과반수 대표제’ 당헌에 따라 남녀 공동운영위원장 체제)에 당선됐다. 86.6%의 찬성률이었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축하받을 일이라기보다는 고생길이 열렸어요. 녹색당 공동위원장은 특별한 자리가 아니라 그저 일해야 하는 자리여서요. 열심히 해야죠.”

―소개될 때마다 늘 ‘최연소’가 따라다녀요.

“사실 녹색당 운영위원장으로 제가 최연소는 아니에요. 전임 김주온 운영위원장님이 저보다 한살 어리셨어요. 나이의 문제는 아니지만, 공동운영위원장으로 소개되면서부터는 그동안 편하게 했던 말들도 좀 더 책임감을 갖고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서울시장 선거 때 페이스북 라이브 진행하시는 걸 봤는데 말씀을 정말 잘하시던데요.

“아, 정말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신지예는 8만2874표(1.67%)를 얻어 4위를 차지했다. 원내 정당인 정의당 후보보다 많이 득표했다. 약 4만5765명이 참여한 청소년 모의투표에서는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 후보를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방선거 뒤 그는 가장 주목받는 청년 정치인 중 한명이 되었다.

―이제 홍길동처럼 정말 여기저기 다 계시더라고요.

“어디에요?”

―낙태죄 폐지나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 현장에도 계시고, 디지털 성범죄와 ‘웹하드 카르텔’ 특별수사 촉구 운동도 함께 하셨고,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무죄 선고 때도 목소리를 높이셨죠. 심지어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조기 영어교육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던데요.

“제가 너무 많이 말하죠?”(웃음)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겠어요.

“지난번에 길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야, 신지예’ 하고 부르더라고요. 쑥스러워서 크게 부르지 말라고 했더니 친구가 저 연예인병 걸렸다고.(웃음) 부담스럽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조심은 하게 되더라고요.”


중학교 때 두발자유 외친 ‘무데뽀’
고등학교 대신 하자센터 선택하고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 나서
녹색당 입당 6년 만에 공동위원장


서울시장 선거, 정의당 제치고 4위
청소년 모의투표, 박원순 꺾고 1위
정당득표율 따라 의원직 배분해
2020년 녹색당 원내 진입이 목표


낙태죄·워마드 등 의제에도 ‘소신’
맥락 삭제된 기사로 힘든 적 많아
정치개혁 뜻있는 여성 발굴해나가
“총선에 나 같은 후보 더 나오길”

지난 6월6일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수서경찰서 앞에서 선거 벽보 훼손 사건에 대한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6월6일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수서경찰서 앞에서 선거 벽보 훼손 사건에 대한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젊은 여성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태도’

―녹색당이 왜 페미니즘을 선거 전면에 세웠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으셨지요? 저는 ‘에코 페미니스트’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 생각에 에코 페미니즘은 이론 안에서 약간 길을 잃은 느낌이에요. 여성들이란 원래 아이 기르고, 출산하고, 매달 피 흘리고, 전통적으로 마을에서 병든 이들을 돌봤기 때문에 지구와 맺는 관계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초기 에코 페미니즘의 메시지였거든요. 그래서 여성들이 환경운동과 생명운동 등에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또한 가부장제에 포섭된 여성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게 됐어요. ‘에코’와 ‘페미니즘’을 굳이 하나로 묶기보다는 페미니즘만으로는, 생태주의만으로는 불완전할 수 있으니까 다양한 의제와 결합하고 확장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스트레일리아나 독일의 경우 녹색당이 창당했을 때 페미니스트들이 창당 멤버였어요. 현재 스웨덴 녹색당의 부총리가 이사벨라 뢰빈이라는 여성인데 아예 페미니즘 내각을 선언했어요. 저는 한국 녹색당도 페미니즘과 별개일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낙태죄 폐지는 ‘글로벌 그린스’(전세계 녹색당들의 협의체)의 공통 정책이기도 합니다.”

―선거 포스터 훼손 사건 땐 무섭고 화도 났지만 후보의 문제의식을 알리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실 당시만 해도 인력 등 캠프 상황이 엄청 열악해서 초기엔 사태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어요. 어디선가 제보를 해주셔서 알았고 대응 성명이 나가니까 그때부터 ‘신지예가 도대체 누구길래’ 하면서 관심이 집중됐던 거 같아요. ‘개시건방진’ 발언(박훈 변호사의 페이스북 글)도 그때 나왔고요.”

―서울시장 선거 이후 특히 여성 이슈 등 민감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언론이 의견을 묻는 듯해요.

“그게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가끔 질문의 의도가 느껴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워마드 성체모독 사건’ 때는 전화에 불나는 줄 알았어요. 질문이 얻고 싶은 대답은 정해져 있고, 대중한테 전달될 때는 맥락이 삭제되고요.”

―제 책방에도 페미니즘 책이 적지 않다 보니 ‘메갈리아와 워마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식의 공격적인 질문을 받을 때가 많아요.

“입을 다물게 만드는 질문이죠.”

―생각대로 100% 설명하지 못하거나 의도치 않게 말실수할 때도 있을 텐데요.

“혜화역 시위에서 ‘문재인 재기해라’는 단어를 쓴 것에 대해 ‘그렇게 큰일이 아니다’라고 인터뷰 마지막에 얘기한 것이 기사화되면서 주변 지인들도 빨리 해명하라고 했어요.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기사에서는 맥락들이 다 잘려 있는 것을 보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여성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태도’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더 자책하거나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는 것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말실수가 특히 잦은 몇몇 남성 정치인은 그때마다 과연 이런 생각을 할까 싶기도 하고요. 한국 정치는 대립 구도에 익숙합니다. 내 편 아니면 적, 우파 아니면 좌파. 그러나 정치는 서로 다르게 보이는 명제 안에서 실마리를 찾아가고 연결고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소수자들이나 약자들이 지워지지 않도록 그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저를 공격하거나 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도 끊임없이 그게 아니라고 상기시켜드려야죠. 여성 인권이 올라간다고 해서 남성 인권이 내려가는 게 아니라고요. 결과적으로 인권은 모두 이기는 쪽으로 진전되어야 하니까요. (침묵) 사실 두려워하는 남성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 포스터를 훼손한 범인이 뭐라고 진술했냐면, 신지예가 서울시장이 돼서 여성들이 정치에 많이 진출하면 자기가 일을 못 구할 것 같아서 그랬다고. 그런 두려움을 없애는 일도 제 역할이니까요.”

그의 서울시장 선거 포스터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얼마 전 책(<세상을 바꾼 벽보: 녹색당 신지예와 선거 포스터>)으로도 출간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지켜야 할 가치를 담은 포스터가 누군가에게는 훼손의 대상이 되는 사태를 따라가며 한국 사회에 던져진 논쟁과 화두를 짚어낸다.

중학교 시절부터 ‘정치적이었던’ 학생

―얼마 전 서울시교육청의 ‘중고교 두발자유화 선언’을 보는데 딱 지예씨가 생각났어요. 중학교 때 두발자유를 요구하면서 학생인권운동을 하셨지요.

“감개무량하더라고요. 이제야 두발자유라니. 2000년도에 두발 규제 반대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교육부가 각 학교에 두발자‘율’화를 권고한 적이 있었어요. 학생, 교사, 학부모 세 주체가 함께 논의해서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교칙을 정하라는 얘기였죠. 근데 실제로는 교사나 학부모가 원하는 대로 규정을 아주 조금 완화하는 수준에서 진행되었거든요. 이번에는 그렇지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학교 현장에서 완전한 두발자유가 되지 않으면 진전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중학생 때부터 너무나 정치적이셨습니다.(웃음)

“화가 많이 났었어요. 초등학생 때만 해도 귀도 뚫을 수 있고, 파마도 자유롭게 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중학생이 되니까 머리를 귀밑 4㎝로 자르라 하고. 제가 다니던 여중에서는 심지어 양말도 몇번을 접어라, 속옷도 베이지색이나 하얀색만 입어라…. 이해할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용돈 모아서 배지 만들고 학교에서 팔았어요.”

―배지요?

“두발자유화 배지. 제가 그걸 만들어서 100원에 팔았는데요.(웃음) 아직 기억나는 게 버스에서 처음 본 애가 자기도 갖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줬더니 버스 안에 있던 애들이 몰려와 달라고 해서 다 나눠 줬어요. 팸플릿 만들어 돌리다가 교장 선생님한테 불려가기도 했어요.”

―친구들 반응은 어땠나요?

“저와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은 응원했지만, 대부분은….”

―신기해하던가요?

“아니요. 싫어했어요. 제가 두발자율화 회의에 들어가서 하도 난리를 치니까. 원래 학생회 임원들끼리 하는 회의였는데 제가 억지로 들어갔거든요.”

―완전 무데뽀!(웃음)

“교사와 학부모들이 귀밑 4㎝로 할까 5㎝로 할까 정하고 있는 데서 제가 막 ‘안 돼요, 두발자유 해야 돼요’ 이러고. 그러면 일부 학부모가 ‘너는 나이도 어린 게, 일제강점기에 안 살아봤으면 말하지 마’ 그러고.”

―녹색당 당원이 되신 지 6년 만에 당을 대표하는 ‘중요한 인물’이 되셨습니다.

“기대하지 못한 일이에요. 당원 가입을 할 때만 해도 직업 정치인으로 살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저 시민의 정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도 그 마음으로 녹색당 활동을 시작한 것뿐이었어요. ‘우리는 자유로운 시민의 연합체다’ ‘우리는 도토리다’ 같은 녹색당의 메시지들이 너무 매력적이었거든요. 그때는 녹색당의 환경 의제뿐 아니라 민주주의적 실천들에 더 끌렸어요. 대의원을 추첨으로 뽑는다든지 여성 과반제를 실천한다든지 하는 것들요.”

―대부분의 정당들이 경제성장에 목을 맬 때 녹색당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차별점이에요.

“맞습니다. 어떤 사회가 살 만한가를 평가할 때 보통 국내총생산(GDP)을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그 측정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지디피가 올라간다고 개인들의 삶이 행복할까.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거든요. 미국 같은 경우도 그렇죠. 지디피는 높은데 불평등지수는 세계 1위고, 홈리스들도 계속 늘어나고요. 사람들이 ‘탈성장’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러나 경제성장만을 놓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진짜 그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지금의 산업구조에 따른 기후변화나 자연 파괴만 보더라도요.”

―일반 당원의 활동을 넘어 본격적으로 정치를 해보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다면요?

“2015년도 일인데요. ‘오늘공작소’에서 청년 지역 재생사업을 했거든요. 청년들이 지역 축제를 만들고 낡은 주택에서 어르신들과 같이 사는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어요. 그랬더니 그 지역에 재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거예요. 다들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더군요.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정치인이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었어요.”

―그 절박한 목소리들이 정치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끼실 때마다 맥 빠지는 일도 많겠어요.

“많죠. 한국 사회의 변화가 매우 역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시민들의 전복적 상상력으로 만든 것이지 정치가 스스로 개혁하고 바뀐 게 아니에요. 여성의 고통을 외면한 낙태죄부터 소유자들 중심으로 짜인 주거정책까지 아무리 바꿔보자고 해도 꿈쩍도 안 합니다. 정치인들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한국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에 답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답들을 정치인들이 선택하지 않은 겁니다. 점점 부패하고 무능해지더라도 권력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 현실을 바꾸는 정치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힘들게 정당을 만들어도 정치 현장에 진입하기 너무 힘들게 되어 있어요. 더 다양한 정당들이 원내로 진입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져야 해요. 다양한 정치인들도 나타나야 하고요. 지방선거에서 저는 페미니즘을 들고나왔지만 여러 소수자와 예술가들, 청년들, 농부들, 자영업자들도 나와야 합니다.”

―20대라는 나이가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느끼신 적도 있나요?

“인터뷰할 때마다 정말 많이 들었던 질문이 부모님의 의견이었어요. 부모님이 뭐라고 하더냐,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으셨냐. 그러면 정말 한계를 많이 느끼죠. 서울시장 선거 유세 현장에서도 제가 후보인 줄 몰랐던 분들이 많으셨어요. 제가 한국 사회가 보통 생각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긴 하죠. 그러나 저는 현재 정치에 필요한 모습이 해결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원자력발전소 문제만 하더라도, 이건 정답이 나와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지속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는 일이에요. 해결사처럼 그냥 해법을 턱 내놓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문제의 곁에 서서 최선의 선택을 함께 고민하는 정치가 필요해요. 에너지와 끈기가 필요한 일인데 그것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저는 다음 총선에서 저처럼 20~30대 젊은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신지예는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선거 당시 ‘출마의 변’에 썼다.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치는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존재합니다.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신지예는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선거 당시 ‘출마의 변’에 썼다.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치는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존재합니다.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원외 정당이란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서울시장 선거를 통과한 신지예는 공동운영위원장 ‘출마의 변’에 이렇게 썼다.

“(서울시장 선거) 유세 마지막 날 만났던 한 여성분이 기억납니다. 그분은 청소년 시절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상처,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최저시급도 받지 못했던 부당한 사건, 월세 낼 돈이 없어 고시원을 전전하는 불안을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제 앞에 찾아와 자신의 삶을 털어놓고 울음을 터트립니다. 저는 그분들의 등을 다독이며 함께 싸우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그뿐이어서 속이 쓰립니다. 그때마다 저는 녹색당이 원외 정당이라는 것이 한탄스럽습니다.”(2018년 9월13일)

그가 시민들과 한 약속은 ‘원외 정당이라는 현실의 한탄스러움’을 만날 때마다 거대한 벽 앞에 서야 했다. 그 고민들이 공동운영위원장 출마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이어서 썼다.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치는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존재합니다.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저는 녹색당이 큰 나무로 자라면 좋겠습니다. 고통받는 수많은 생명을 감싸 안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당찬 정당으로 우뚝 서길 바랍니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우선 원내 진입이겠죠?

“맞아요. 제 임기 안에 원내 진입. 녹색당은 2020년 총선 때 원내 정당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제도개혁이 필수적이고요.”

그와 함께 당선된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은 2011년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 때부터 사무책임자로 창당을 이끌었다. 2기(2012년 10월~2014년 9월)와 3기(2014년 10월~2016년 9월) 공동운영위원장을 역임한 뒤 2년 만에 다시 당의 일선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그는 비례민주주의연대 대표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득표율에 비례해 국회 의석 배분) 도입을 위한 활동에 집중했다. 선거제도 개혁 없이는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정치’도,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의 실현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공부하면서 보니까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새로운 정치를 염원하는 이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사안이더라고요.

“한국의 선거제도는 전세계에서 앞다툴 만큼 비례성이 굉장히 낮아요.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죠. 10%의 표를 얻으면 의석의 10%를 가져가고 50%를 얻으면 50%를 가져가는 게 당연한데, 한국의 선거제도는 승자 1인을 지지하지 않은 의견들, 말하자면 그 나머지 표에 담긴 민의는 다 배제해버려요. 이 구조에서 득을 보는 거대 정당들은 이 현실을 바꿀 의지가 없어요. 그들은 자신들에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이롭지 않다는 걸 잘 알아요. 선거제도 개혁을 하겠다고 문재인 대통령도 계속 말씀하고 계시지만 더불어민주당조차 굉장히 미온적입니다. 정치인들이 자기를 위한 정치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녹색당의 원내 진입 외에 ‘정치인 신지예’로서 꼭 하고 싶으신 게 있나요?

“저는 사람들을 발굴해내고 키워내는 일에도 관심이 많아요.”

―발굴이요?

“미국에 ‘쉬 슈드 런’(She Should Run)이라는 정치개혁 비영리 민간단체가 있어요. 미국도 한국처럼 양당제가 너무 공고해서 제3당이 등장하기 어렵죠. 결국 여성들의 정계 진출 문턱도 높아지고요. ‘쉬 슈드 런’은 정치개혁에 뜻이 있는 여성들을 발굴해서 후보로 키워내는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일정 기간 정책 관련 수업을 들으며 어떻게 캠페인을 기획할 수 있는지, 어떻게 정치 메시지를 전략적으로 짤 수 있는지, 어떻게 후원금을 모을지 등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죠. 저도 그런 곳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저도 다니고 싶네요.

“진짜요? 관심 있으세요?”

―제가 음악을 하고 책방을 하고 글을 쓰는 일이 모두 정치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정치 용어나 개념, 선거 제도, 이런 공부를 제가 너무 안 했던 거예요.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서 찾아봐도 이해하기 어렵고요. 저처럼 뒤늦게 정치의 중요성을 알게 된 사람들이 기본 개념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면서 ‘내가 이런 걸 원하는구나,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구나’ 깨닫고 자기 언어를 찾아가도록 돕는 단체나 공간이 있다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해왔어요.

“내년쯤 시작하는 게 목표예요. 녹색당에서 기획하는 일이지만 꼭 녹색당원이 아니더라도 여성들과 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거나 빼앗기지 않으면서도 정치에 뛰어들 수 있도록 서포터 역할을 해주고 싶어요. 서로 뜻이 맞다면 녹색당이 하려는 바를 그분의 입을 빌려 할 수도 있을 거고요.”

“저를 공격하거나 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도 끊임없이 그게 아니라고 상기시켜 드려야죠. 여성 인권이 올라간다고 해서 남성 인권이 내려가는 게 아니라고요. 그런 두려움을 없애는 일도 제 역할이니까요.”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저를 공격하거나 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도 끊임없이 그게 아니라고 상기시켜 드려야죠. 여성 인권이 올라간다고 해서 남성 인권이 내려가는 게 아니라고요. 그런 두려움을 없애는 일도 제 역할이니까요.”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신지예라는 ‘재미’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스피치 연습도 하세요?

“저는 해요. 체계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니고 그냥 개인적으로 해요. 급작스러운 질문에 답하는 게 굉장히 어려워요. 그런데 저는 정치인한테 제일 중요한 건 언변보다 끈질김이 아닐까 싶어요.”

―끈질김이요?

“어떤 법안을 발의하거나 다른 의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할 때, 이야기를 잘한다기보다는 계속 물고 늘어져 성취할 때까지 해내는 거.”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긴 한데 요즘 읽으시는 책이 있다면요?

“얼마 전에 수전 팔루디가 내한했잖아요. 다시 한번 읽었어요. <백래시>.”

―그 책 재미있죠. 너무 두껍기는 하지만.(웃음)

“재미있죠…. 재미, 재미….”

한국 상황과 놀랍도록 닮은 ‘벽돌처럼 두꺼운 그 책’을 읽은 신지예는 누가 ‘한국의 백래시’를 수전 팔루디처럼 정리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미’라는 단어를 몇번이고 반복하며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신지예가 출연한 팟캐스트 방송을 들은 적이 있다. 페미니즘 코미디 방송인 <영혼의 노숙자>인데, 진행자 맷은 신지예가 뛰어든 전쟁 같은 정치 현장 말고 인간 신지예가 사는 일상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맷은 “그러나”를 말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분노의 방송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들은 두시간 동안 안희정 전 충남지사 무죄 판결에 대해, 디지털 성폭력 웹하드 카르텔에 대해 전혀 웃기지 않은 방송을 했다. 신지예는 몇번이나 격앙된 감정 때문에 목소리가 떨리곤 했지만, 나는 이 글에서만큼은 그 또한 신지예의 ‘재미’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표현해보겠다.

녹색당의 공동운영위원장이자 페미니스트로서, 20대 여성 정치인으로서, 신지예는 매일매일 재미를 품고 매사에 임할 것이다. 녹색당을 대표하는 재미, 페미니즘에 가해지는 이런저런 오해와 편견에 맞서 싸우는 재미, 20대라는 나이를 얕잡아보는 시선에 답답해하는 재미. 그럼에도, 꿋꿋하게, 함께, 세상을 바꿔나갈 재미.

“재미”를 웅얼거리던 신지예의 얼굴에서 나는 멋대로 신지예가 느낄 가장 궁극의 재미를 넘겨짚어본다. 아마도 그건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재미’가 아닐까. 모두가 인권을 공평하게 나눠 가진 세상이 마침내 도래하여서, 이제 페미니즘이 필요 없어져버리는 재미.

와, 생각만 해도 진짜 재미있겠다.

요조 ▶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쓴다. 그리고 책방 주인이다. 제주 서귀포 성산리에 나의 책방, 책방 무사가 있다.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와 네이버 오디오클립 ‘세상에 이런 책이’를 진행한다. <오늘도, 무사>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등 몇권의 책을 썼다. 더 좋은 책을 쓰고 싶다. 오은과 함께 번갈아 누군가의 ‘요즘은’ 어떤지 물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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