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3일 또다시 ‘한밤 기습 발표’를 했다. 청와대가 이날 밤 10시24분 출입기자들에게 뿌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는 “박근혜 대통령은 내일(4일) 오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예정이니 참고바랍니다”라는 내용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시민들의 2차 촛불집회(5일)를 코앞에 둔 시점이자, ‘불통 개각’에 대한 반감과 ‘대통령 수사’ 여론이 고조되는 시점에 나온 공지다. 청와대는 시민들의 1차 촛불집회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 밤에도 ‘박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에게 일괄사표 제출을 지시했다’고 긴급 발표한 바 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 대국민 담화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러나 그동안 시민사회와 여야 정치권에서 나온 요구에 대응하는 내용일 것으로 관측된다. ‘최순실 의혹’에 대한 소상한 설명과 사과, 검찰의 철저한 수사, 그리고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 등 책임총리제 운영에 대한 구상 등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검찰 수사에 응해야 한다”는 요구에 화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현직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는 상황이 가시화되는 셈이다.
이미 이날 낮부터 이를 위한 사전 움직임들이 잇따랐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구원투수’로 내세운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부터 대통령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뜻을 밝혔다. 김 후보자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직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헌법 규정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들이 있는데, 저는 수사와 조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제가 가진 답은 하나다. 대통령을 포함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강조하며 “다만 국가원수인 만큼 그 절차나 방법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박 대통령이 임명한 한광옥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분명한 것은 최순실 사건은 확실하게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도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나와 “수사 진행 경과에 따라 진상 파악을 위해 필요하다면 수사 필요성을 감안해 (대통령이 수사를 자청하라고) 건의드릴 것”이라고 말해, 박 대통령 수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새누리당에서는 하태경 의원이 동료 의원들에게 “내일(4일) 의원총회가 오후 2시에서 4시로 변경됐다. 그 이유가 그 전에 대통령이 수사받겠다고 기자회견 할 것이라는 첩보가 돈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도 기자간담회에서 “필요하다면 청와대나 대통령도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것을 이미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며 “따로 (직접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건의할 사안도 아니고, 건의해서 진행해야 할 상황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검찰의 칼끝도 점차 박 대통령을 향해 가고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는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통화내역 조회와 진술 등을 토대로, 박 대통령이 최씨와 연락하며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 설립을 논의한 뒤 직접 안 전 수석에게 자금 모금 등을 지시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자금 모금을 위해 재벌 총수들과 독대한 정황까지 나오면서 조사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는 “아직 (대통령 조사를)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라면서도 “조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석진환 서영지 기자 soulf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