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최근 들어 마주한 곳은 지난 5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었다. 그날 나란히 앉았으나 둘의 시선은 줄곧 ‘정면’이었다. 지난 ‘6·15 남북공동선언 9돌 특별연설’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가 위태로워 걱정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말했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 “틈만 나면 국민을 선동한다. 김대중씨는 자신의 입을 닫아야 한다”는 성명을 냈던 게 두달 전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원한 지 29일째인 10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았으나, 이제 20층 병실에서 인공호흡기를 꽂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면하지는 못했다. 대신 대기실에서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의 손을 잡았다. 그는 “세상에 기적이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마시라”고 했고, 이희호씨는 “대통령이 깨어나서 다녀가셨다는 말을 들으면 위로가 될 것”이라고 답례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둘이 합쳐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우리나라는 미얀마처럼 됐을 것”이라며 “그때는 목숨 걸고 싸웠다”고 강조했다.

15분 남짓 병문안을 마치고 나온 김 전 대통령은 ‘이번 방문을 화해로 봐도 되느냐’는 취재진 물음에 “그렇게 봐도 좋다”고 했다. ‘화해’란 말을 직접 쓰지는 않았으나, 그는 “그럴 때가 온 것도 아니냐”는 말까지 뒤에 더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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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김영삼 후보에게 역전승을 거두며 미묘한 경쟁 관계에 들어선 둘은 87년 대선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 90년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의 3당 합당(민자당)을 통한 92년 대권 획득 등을 거치며 갈수록 골이 깊게 파였다. 이희호씨조차 자서전 <동행>에서 “두 사람은 독재 앞에선 동지였지만 그 밖의 문제에선 물과 기름 같은 사이”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날 병원에 들어가면서 기자들과 만나 “(디제이와) 나는 협력자적 관계이자 경쟁자적 관계이다. 이건 세계에서 유례없는 특수한 관계”라며 “제6대 국회 때부터 동지적 관계이자 경쟁 관계이며 애증이 교차한다”고 술회했다.

그의 이날 ‘화해’ 언급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인 권노갑 전 의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화해 문제가 해소됐다”고 반겼다. 그러나 다른 측근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비난을 하지 않겠다면야 좋은 것 아니겠느냐”며 ‘역사적 화해’로 확대해석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