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서울시청 근처 회사에 다니는 ㄱ대리는 점심 뒤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러 서울시청 지하도상가 ‘미리내 가게’에 간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커피 한잔 값을 미리 내겠다”며 두잔 값을 낸다. 얼마 뒤 노숙인 ㄴ씨는 가게 앞을 지나다 알림판에서 ‘어떤 고마우신 분이 커피 한잔 값을 미리 내주셨습니다’란 문구를 발견한다. 가게 사장한테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느냐” 물으니 흔쾌히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어놓는다.

소설 속 얘기가 아니다. 21일 서울시청 인근 지하도상가에 등장한 미리내 가게들에서 벌어질 장면이다. 지하상가 공간을 관리하는 서울시 산하 서울시설공단, 미리내운동본부, ㈜기브네트웍스는 이날 ‘명동칼국수’ ‘카페 옆 분식집’(사진) ‘트리언카페’와 이른바 미리내 가게 양해각서를 맺고 현판식을 열었다.

이들 가게 3곳에선 손님들이 돈이 없는 다른 이들을 위해 미리 돈을 낼 수 있다. 돈이 지불되면 가게 주인은 그 액수만큼 가게 밖 알림판에 표시한다. 미리 값을 치른 음식은 누구나, 형편이 어렵지 않은 사람도 이용할 수 있다. 대학생 서포터스들이 가게를 찾아 문제점이 있으면 풀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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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가게는 100여년 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된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자신이 마실 커피와 함께 누군가를 위한 커피까지 미리 돈을 내놓으면, 나중에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나 노숙인이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하자는 ‘커피 기부 운동’으로 시작됐다.

국내에선 지난해 초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의 한 수제햄버거 가게를 시작으로 전국에 100곳 넘는 미리내 가게가 들어섰다. 카페나 빵집, 음식점, 미용실, 노래교실 등 업종도 다양하다. 새로운 나눔실천 운동이 서울 한복판 서울시청 지하상가에서 날개를 펼지 주목된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