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24일 텔레그램방 성착취 범죄의 주요 용의자인 조주빈씨, 일명 ‘박사’의 신상을 공개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법)에 근거해 피의자 신상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의자 개인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란 의미를 넘어, 디지털 성범죄를 끝장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조씨는 ‘갓갓’ ‘와치맨’ 등이 만든 이른바 ‘엔(n)번방’에 이어 미성년자 등 성착취 영상물을 보다 정교하게 상업적인 시스템으로 텔레그램방에 제작·유통해온 인물이다. 지난주 경찰이 그의 집에서 1억3천만원의 현금을 압수했지만, <한겨레>와 <코인데스크>의 분석에 따르면 그의 암호화폐 지갑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자금 흐름이 확인됐다고 한다. 회원들을 확인할 수 있는 실마리일 뿐 아니라 박사방 이외의 범죄에도 조씨가 연루됐을 가능성도 제기되는 만큼 철저한 수사가 요구된다.
범죄의 끔찍한 내용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은 조씨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20대 청년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디지털 성범죄가 일상에 만연해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동안 심각성에 비해 디지털 성범죄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성범죄’라고 인식되어 왔다. 국민동의청원 1호로 올라간 ‘텔레그램 성범죄 해결 청원’의 핵심을 외면한 채 국회의원들이 성폭법에 ‘딥페이크 처벌’ 규정 하나만 추가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디지털 성범죄엔 양형기준도 없다 보니, ‘초범이다’ ‘반성한다’ 같은 이유로 법적 형량에 훨씬 밑도는 형량이 구형·선고되는 게 다반사였다. 엔번방의 전 운영자인 ‘와치맨’은 집행유예 기간에 또다른 성착취물 게시 사이트를 운영했는데도 며칠 전 3년6개월형 구형에 그쳤다. 가입자가 최고 수십만명에 이른다는 엔번방 사건은 이런 무른 인식과 법·제도가 ‘괴물’ 같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에 다름 아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 지시에 이어 경찰청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가입자 전원 수사와 국제 공조 강화 등을 다짐했다. 범죄 예방을 위해서라도 일벌백계가 불가피하다. 정치권은 경쟁적으로 엔번방 대책 법안을 내놓고 통과를 약속하고 있다. 국민들이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나아가 이번 사건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문화와 분리해 볼 수 없다는 지적에도 모두가 귀 기울이길 바란다. 이번엔 정말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