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미국, 일본 같은 선진국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귀족 노조’ 담론을 떠올리게 하니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겐 불편하게 들릴 수 있겠다. 하지만 체계적인 실증분석 결과여서 찬찬히 들여다볼 만하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주최로 27일 열린 토론회 테이블에 오른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발제문 중 두드러진 내용은 노동자 5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을 국제 비교한 대목이다. 비교 결과, 한국은 월평균 6097달러로 미국(4736달러), 일본(4079달러), 프랑스(5238달러)보다 높았다. 기준 연도(한국 2017, 미국·프랑스 2015, 일본 2016) 차이, 물가 등을 고려한 구매력평가 기준이라고 한다. 대기업 임금의 전례 없는 국제 비교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기업 노동자의 고임금은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최대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국의 경우 500인 이상 대기업의 노동자 1인당 임금을 100으로 놓았을 때 1~4인과 5~9인 기업의 임금은 32.6과 48.3이다. 미국(78.8, 64.8), 일본(65.1, 72.6), 프랑스(58.8, 63.4)에 견줘 유독 심하게 차이가 난다. 전체 기업의 1인당 평균임금은 한국이 월 3302달러로, 미국(4200달러), 일본(3504달러), 프랑스(3811달러)보다 낮은 것과 맞물린 필연적 결과다.
대기업 정규직이 원청과 하청의 불평등한 관계에 편승해 ‘고물’을 얻어먹고 있다는, 해묵었지만 날 선 비판을 떠올린다. 국제 비교에서 높게 나타난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수준이 자랑스럽지 않은 건, 생산성에서 비롯된 마땅한 몫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심 제조업에 닥친 구조적 위기 국면은 저생산성의 실상을 보여준다.
생산성을 반영하는 정당한 ‘차이’라고 하기 어려운 대-중소기업 노동자의 ‘차별’성 임금 격차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다.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산 소득, 기업-가계 소득의 격차와 맞물리면서 양극화의 골을 깊게 하고 전반적인 경제의 토대를 허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기업 정규직도 이 위험을 피할 수 없다.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이 ‘사회안전망이 허술하니 임금투쟁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하소연에 머물러서는 곤란한 이유가 여기 있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 출범을 계기로 단기적 요구 수준을 낮추고 중장기적 실익을 챙기는 쪽으로 힘을 모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