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문건 196건 추가 공개의 후폭풍이 거세다. 최고의 엘리트 법관들이 국민을 ‘이기적 존재’로 바라보고 사법부의 독립과 헌법적 가치보다 ‘조직의 목표 달성’에 매달려온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법원 스스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회의감은 더 커졌다. 법원의 ‘결자해지’가 없는 한 이제 특별재판부 구성 등 특단의 방안도 불가피하다.
김명수 대법원은 그동안 수사에 협조하겠다면서도 사법정책실·사법지원실·인사 자료, 이메일, 메신저 등을 임의제출해달라는 검찰 요구에 “수사 필요성 및 관련성이 없다”며 계속 거부해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과 관련된 압수수색 영장은 연달아 기각됐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위안부 소송 등 새로운 ‘재판 거래’ 의혹이 속속 나온 데 이어, 추가 공개 문건에선 기획조정실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뿐 아니라 다른 부서와 ‘윗선’ 개입의 흔적들도 드러났다.
전 기획조정실 심의관 컴퓨터에서 발견된 ‘체크리스트’에는 박병대 전 처장이나 고영한 전 처장의 지시·말씀 사항이 나오는데, ‘법원 우군 만들기 전략’이나 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국회의원들의 동향 파악을 주문한 내용 등이 들어 있다. <조선일보>를 통한 홍보전략 문건의 작성 주체는 기획조정실과 사법정책실이다. 사법정책실은 법원 내 특정 커뮤니티의 댓글 내용을 분석하며 대응 방안을 제시하는 대외비 문건도 만들었다. 대한변협 회장에 대한 대응 방안 문건에는 사법지원실·사법정책실·사법등기국 등의 제안이 총망라돼 있다. 사찰을 방불케 하는 내용과 여론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시도 등은 민주주의의 근간에 관련된 문제다. 이런 의혹을 덮어두고 가자는 말인가. 1일 대법관 퇴임식을 한 고영한 전 처장 등은 구체적인 언급은 피한 채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스럽다”고 말하며 동료 법관들에겐 “사법부 독립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제안을 청와대에 했다는 문건이 바로 전날 공개됐는데도 이런 말을 하는 건 뻔뻔한 건가, 오만한 건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다음주 중 ‘사법농단’ 의혹의 책임자에 대한 수사·처벌과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추미애 대표도 “사법부가 스스로 자정 능력이 없다면 국민 재판부 구성 등을 통해 국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반민특위나 5·16 ‘혁명재판소’와는 달리 현역 법관으로 구성하는 방안이라고 해도, 전례 없는 특별재판부 구성 요구에 법원도 곤혹스러울 것이다. 대부분 판사들 또한 이런 문건 내용에 충격과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다. 검찰 수사팀은 이례적으로 이날 “법원이 검찰에 확보한 자료만 내주며 생색을 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명수 대법원’의 결자해지를 마지막으로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