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묘비 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 오랜 세월, 5·18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화상처럼 남아 있었다. 1980년 이후 조금씩 ‘그날’의 진실이 알려진 뒤에도 신군부의 왜곡과 은폐 속에 사람들이 죄책감과 부채감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노래처럼 분노와 애도뿐이었다.
6월항쟁이 열어젖힌 국면과 민주정부의 출범으로 국회 광주청문회(1988~1989), 검찰 수사와 재판(1995~1997),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조사(2007) 같은 기회가 있긴 했다. 드러난 사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최근 쏟아지는 새로운 증언은, 아직도 가려진 진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5·18 당시 계엄군과 수사관 등에 의한 성폭행·성고문 문제가 38년이 흘러서야 공론화된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광주항쟁에서 여성은 ‘가두방송’과 ‘주먹밥’으로만 상징되어왔던 게 사실이다. 여성들은 끔찍한 성폭력의 기억은 물론 피해 사실을 숨기려 하는 가정과 사회의 억압 속에서 이중삼중의 상처와 후유증을 견뎌왔다. #미투가 가져온 변화에 힘겹게 용기를 낸 이들의 증언을 더는 외면해선 안 된다. 5·18특별법에 따라 올해 9월 출범할 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 성폭력을 명시하는 개정법안이 발의되는 등 논의가 진행중인데,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과 반인도적 범죄는 공소시효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청문회와 재판에서도 발포 책임자가 가려지지 않은 가운데, 집단발포 등 군의 주요 결정을 보안사령부가 사실상 주도했다는 당시 505보안부대 핵심 수사관의 증언은 주목할 만하다. 광주에 투입됐던 공수부대는 공식체계가 아니라 전두환 보안사령관에서부터 내려오는 비공식 라인의 지휘를 받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으로 군 내부의 사조직이 어떻게 불법적인 지휘 체계를 작동시켰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 공수부대의 암매장 등 비밀작전 수행 의혹, 최근 잇따라 드러난 신군부의 5·18 군기록 조작도 규명해야 할 과제다.
광주 금남로에서 5·18 전야제가 열린 17일, 사람들은 기가 막힌 망언을 또다시 들어야 했다. <전두환 회고록>의 집필자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라디오에 나와 “오히려 무장 시위대가 기관총을 많이 쐈다”고 말하는가 하면, 북한군 개입 주장과 ‘광주사태’ 표현을 굽히지 않았다. 수십년간 광주를 고립시키고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장해온 망언과 궤변이 더는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새로운 범죄 의혹이 제기되고 새로운 증언들이 잇따르는 만큼, 전두환씨에 대한 법적 처벌도 다시 가능하다는 전문가들 의견마저 나오고 있다.
5·18 38돌 아침에 다시 다짐한다. ‘이제 온전한 진실과 정의가 서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