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 사건으로 집행유예 상태인 조현아(44)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경영 복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이르면 다음달 한진그룹 계열사 칼호텔네트워크 이사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27일 “경영에 복귀하는 것은 맞는데 언제 어디로 복귀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언론에 경영 복귀 사실을 흘려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 모양새다.
한진그룹은 조 전 부사장이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항로변경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을 경영 복귀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또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넘게 흐른 만큼 조 전 부사장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러나 모두 설득력이 떨어지는 얘기다. 땅콩 회항 사건에서 항로변경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다.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12월 미국 뉴욕 제이에프케이(JFK)공항에서 기내 서비스를 문제 삼아 타고 있던 대한항공 여객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도록 지시하고 승무원들에게 폭언·폭행을 하며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사건의 본질은 직원 위에 군림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재벌 3세의 갑질이다. 총수 일가가 어떤 견제도 받지 않은 채 전횡을 일삼는 ‘황제 경영’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재벌 갑질’하면 땅콩 회항부터 떠오르는 이유다. 법원도 폭언·폭행과 사무장을 여객기에서 내리게 한 행위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조 전 부사장은 2019년 12월까지 집행유예 기간이다. 집행유예란 범법자에게 형의 집행을 미루고 반성의 시간을 주는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은 지금 외부 활동이 아니라 자숙해야 할 때다.
조 전 부사장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조 전 부사장은 피해자인 박창진(49) 전 사무장를 비롯해 피해자들에게 아직까지 사과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또 재판 과정에서 제출한 반성문 외에는 그동안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죄한 일도 없다. 특히 박 전 사무장은 사건 직후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휴직했다가 지난해 5월 업무에 복귀했는데 팀장에서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됐다. ‘괘씸죄’ 성격이 강하다. 박 전 사무장은 지난해 11월 대한항공을 상대로 부당징계 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가해자는 총수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경영에 복귀하고 피해자는 부당하게도 불이익을 받는 현실을 어느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민간기업이라고 해서 총수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은 기업을 개인의 전유물로 여기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그토록 떠들썩하게 만든 땅콩 회항 사건에서 교훈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 전 부사장의 무리한 경영 복귀는 공분을 다시 부를 것이라는 점을 조 전 부사장과 한진그룹은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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