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개헌안 발의 ②
청와대가 ‘대통령 개헌안’의 순차 공개에 나서면서 20일 헌법 전문·기본권 내용을 발표했다. 완결된 개헌안을 공개한 건 처음인데, 국회의 개헌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다만, 예고한 발의일(26일)이 1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요지만 내놓고 전문을 공개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야당이 ‘정략적 개헌쇼’라 비판하는 와중에 굳이 사흘씩이나 ‘쪼개기 발표’를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국민 관심과 이해를 높이려는 의도라 해도 ‘정략적 접근’이란 오해는 피하는 게 좋다.
헌법은 그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이어야 한다. 헌법 전문에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을 추가한 건 그런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국민 저항권’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촛불 시민혁명’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 진행중인 사안이니 성급하다는 반론에도 일리는 있다.
또한 헌법은 미래를 예시하는 방향타 구실을 한다. 생명권, 안전권 신설은 앞으로 국가가 지향해야 할 역할을 보여준다. 생명권은 사형제 폐지 논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안전하게 살 권리와 국가의 재해예방 의무는,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고 언제 어디서 사고와 맞닥뜨릴지 알 수 없는 국민의 불안감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
헌법 개정은 제도 개혁의 출발점이란 의미도 지닌다.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 도입은 국민이 권력의 감시자로, 직접적인 입법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주민소환제가 있지만 국회의원은 명백한 비리가 드러나도 확정판결 전까지 책임을 지울 수 없었는데, 국민소환제가 도입되면 국민이 직접 소환할 수 있게 된다.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해 대의민주주의제를 보완하라는 목소리는 ‘촛불시민’의 요구이기도 하다.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 삭제는 국회의 사법개혁,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에 영향을 줄 것이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에 더해 영장청구권까지 독점하면서 발생하는 폐해가 적지 않은데, 헌법 개정으로 영장청구 주체를 변경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헌법은 그 시대의 사회·정치적 지표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 시절의 ‘국민 동원 체제’를 반영하는 ‘근로’란 용어를 ‘노동’으로 수정한 것은 뒤늦은 감이 든다. 이미 ‘노조’ ‘고용노동부’ 등 ‘노동’이란 용어가 보편적으로 쓰이는 게 현실이다. 국가에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수준 임금 지급 노력 의무’를 부과해 남녀 차별과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높인 점도 긍정적이다. 공무원의 노동 3권을 인정하되 현역군인 등 법률로 정한 예외적 경우에만 이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는데, 국제노동기구나 유엔 기준을 고려하면 당연한 개정이다.
미흡한 점도 있다. 환경단체들은 지구적 생태 위기를 반영하지 못했으며, 국가의 ‘동물보호 정책 수립 의무’를 명시했지만 생명권을 ‘동물들의 권리’로 확대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한다. #미투가 요구하는 실질적인 성평등 실현과 여성의 대표성 강화, 성소수자 차별 시정을 위한 제도가 부족하다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일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