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바로 뒤에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바로 뒤에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만날 예정이었으나, 북한 쪽 취소로 불발됐다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의 20일(현지시각) 보도에 대해 미 국무부는 “북한이 이런 기회를 잡지 못해 유감”이라고 사실상 보도 내용을 확인했다. 보도를 보면, 북한이 먼저 회동을 제안해 펜스 부통령 방한 2주 전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북한은 펜스 부통령의 탈북자 면담과 새로운 대북 제재 선언에 불만을 나타내며 2시간 전에 회동을 취소했다고 한다.

상황을 돌아보면, 펜스 부통령이 대북 회동을 앞두고 평소보다 더욱 강하게 북한을 자극한 점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 입장에선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회동 2시간을 앞두고 만남을 취소하는 건 외교적 행동이 아니다. 안 그래도 믿지 못하는 북한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울 수 있고, 회동 실패의 책임을 북한에 돌릴 직접적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비록 얼굴 붉히는 한이 있더라도 북-미가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히 있었으리라고 본다. 평창 올림픽 같은 자연스러운 기회를 또 마련하기 쉽지 않은데, 북한이 좀더 전략적인 접근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런 내용이 뒤늦게 미국 언론에 공개된 건, 한국에서의 초강경 행보로 비판받는 펜스 부통령 쪽이 접촉 불발의 책임을 북한에 돌리려는 ‘언론 플레이’ 측면이 없지 않다. 성사도 되지 않은 ‘비밀 접촉’ 과정을 이렇게 언론에 공개하면, 북한은 앞으로 미국과의 접촉 시도마저 꺼릴지 모른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 상당수가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외교 상황’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북-미 관계의 잠재적 불안 요소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번 사례를 통해서, 미국이 대북 예비접촉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만은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북·미 모두 좀더 열린 마음으로 다시 접촉에 나서길 바란다. 이를 위해선 특히 평창 올림픽 이후 재개될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규모와 방식 등을 지혜롭게 처리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또 북-미 관계가 크게 벌어진 현 상황에선, 이번 사례처럼 한국 정부가 북-미 접촉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게 긴요할 것이다. 정부는 치밀한 전략과 인내심으로 북·미를 한자리에 앉게 하는 외교전에 계속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