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21일(현지시각)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평화’라고 말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현 정부가 촛불혁명을 통해 출범했음을 분명히 하면서 ‘촛불’이 지닌 평화의 힘을 설명했다. 북한 붕괴를 바라지 않고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지난 7월의 베를린 구상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란 대북정책 기조를 재확인했다. 특히 내년도 평창겨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북한의 참가를 촉구한 점은 눈에 띈다.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실험과 미국의 강경 대응으로 어느 때보다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가 높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유엔 총회장에서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 ‘평화’를 강조한 건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한국전쟁의 이산가족이란 점을 소개하며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 대통령인 나에게 평화는 삶의 소명이자 역사적 책무”라고 말했다.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역설한 것이다. 이날 연설에서 ‘평화’라는 단어가 서른 번이나 등장한 건 의미심장하다.

문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높이 평가하고, 제재와 압박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러나 ‘제재·압박’ 역시 궁극적으론 ‘대화’를 향한 평화적 해결 원칙의 일환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평창올림픽의 북한 선수단 참가와 남북 공동응원단 구성은 북핵 위기가 최고조에 올라 있는 현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대통령이 화합과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을 한반도 갈등 해소와 남북관계 진전의 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힌 건, ‘북핵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하는 국제 여론의 확산에 도움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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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연설은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며 호전적 언사로 가득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날 유엔 연설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문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서 국제사회의 기여와 역할, 다자주의를 강조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그러나 북핵 해결을 위해선 현실적으로 한-미 공조가 중요한 만큼, 유엔 연설에서 드러난 차이점을 어떻게 조율해내서 실제로 정책화하느냐는 숙제가 남아 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평화’ 기조가 제대로 정책으로 구현됐다고 보긴 어렵다. 정부 외교안보팀의 역할과 책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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