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부답.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태도가 꼭 그랬다. 그는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옅은 미소만 띠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황 총리를 보면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만큼이나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며 웃을 정도로 대한민국이 한가한 상황인가. 황 총리는 어쭙잖은 ‘대권 놀이’에 한눈팔지 말고 권력 이양기를 잘 관리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게 옳다. 만약 출마할 생각이라면 오늘이라도 분명하게 뜻을 밝히고 총리직을 그만두는 게 차라리 낫다. 모호한 태도로 정치권과 정부 부처, 국민에게 큰 혼란을 주면서 국정 운영을 방기해선 안 될 것이다.
황 총리에 대한 관심이 치솟는 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 때문일 것이다. 반 전 총장의 출마 포기 이후 황 총리 지지율이 10%대로 뛰면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2위에 올랐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당장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황 총리가 새누리당 후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지율을 따지기 전에 먼저 돌아봐야 할 게 있다. 황교안 총리가 지금 이 시점에 대선에 나서는 게 적절하고, 또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느냐는 점이다.
황 총리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나라가 엉망이 된 데 큰 책임을 느껴야 할 핵심 중 한 사람이다.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해 탄핵소추를 당한 상황인데, 그 정부의 2인자인 국무총리가 ‘나는 관계없다’는 식으로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행태가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는가. 국민 보기엔 뻔뻔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더구나 황 총리는 지금 대통령 유고에 따른 권한대행이다. 출마를 위해 총리직을 그만두면,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겸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진다. 장제원 바른정당 대변인 말처럼 대한민국은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 선거에 나온 사람을 국민이 선택해줄 거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착각이다. 그런데도 황 총리는 출마 여부에 즉답을 피하면서 즐기고만 있으니 국정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상황이 이런 데엔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의 책임도 크다. 반기문 전 총장 지지율이 높게 나오자 그에게 열심히 구애를 하다가 이젠 황교안 총리에게 기대를 거는 새누리당 태도는 최소한의 정당성도 없는 ‘떴다방식 정치’에 불과하다. 어떻게든 정권을 놓지 않으려는, 탐욕과 도덕적 타락에 찌든 한국 보수의 민낯만 드러낼 뿐이다. 박근혜 정권의 파탄으로 한국 사회의 보수는 이미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렇다면 세의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유승민, 남경필과 같은 새로운 보수의 대안을 찾는 게 오히려 떳떳하다. 황 총리를 ‘제2의 반기문’으로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대선 출마설’ 즐기는 듯한 황 총리의 어이없는 태도
- 수정 2017-02-02 17:21
- 등록 2017-02-02 1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