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6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문체부 실·국장 6명 해임 과정에서 직권남용 혐의 등을 수사하려는 것이라지만, 규명해야 할 의혹은 이것만이 아니다.
김 전 실장이 직권남용의 책임을 모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는 2014년 10월 당시 문체부 1차관에게 “1급 실·국장 6명으로부터 일괄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관계자의 증언이 엄연한데도 그는 국회 청문회에서 “자르라고 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뻔한 거짓말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석 달 전인 그해 7월4일 김 전 실장이 ‘주요 부처 실·국장 동향파악-충성심 확인’을 지시했음을 보여주는 메모가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에서 발견됐다. 그 직후 문체부 실·국장 성향 조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이어 실·국장들이 일괄 사표를 냈고 3명이 실제로 해임됐다. 그 뒤 문체부에선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나돌고 최순실·차은택씨 등의 이권 챙기기와 국정농단이 아무런 제지 없이 벌어졌다. 김 전 실장은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사전 정지 작업을 한 셈이다. 그 자체로 직권남용일뿐더러 최씨 등의 국정농단을 지원·방조한 범죄행위다.
김 전 실장의 혐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최씨와 함께 국정농단의 한 축으로 의심된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김 전 실장은 검찰·법원 등 공직사회는 물론 언론과 시민사회까지 전방위로 감시하라고 독려하고 지휘했다. 곧 ‘사찰’과 ‘불법 통제’의 주범이다.
검찰에 대한 간섭과 수사방해 의혹이 대표적이다. 그가 김진태 당시 검찰총장과 매일같이 전화 통화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김 전 총장이 최순실씨의 전남편 정윤회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터진 2014년 말, 정씨 집을 압수수색 대상에서 제외하라고 수사팀에 지시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가 국정농단 대신 문건 유출로 수사 초점을 바꿨다는 의혹은 이미 파다한 터다. 정씨에 대한 본격 수사를 접은 검찰의 결정이 김 전 실장의 지시에서 비롯됐다면, 이는 이번 같은 국정농단 사태를 진작에 규명하고 멈춰 세울 기회였던 검찰 수사를 결정적으로 방해한 것이다. 엄정한 조사와 처벌이 따라야 한다.
김 전 실장은 법의 허점과 수사의 맹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이번에는 그가 그런 ‘기술’을 동원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특검의 주도면밀한 수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도마 위에 오른 국정농단의 ‘또다른 주범’ 김기춘
- 수정 2016-12-27 05:12
- 등록 2016-12-27 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