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일 새 국무총리에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전격 지명했다. 지난 30일 저녁 청와대 비서실을 깜짝 개편한 데 이은 두번째 일방적인 ‘인적 개편’이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상황의 위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꼼수로 위기를 벗어나려는 대통령 모습에 절망감과 심한 분노를 느낀다. 대통령 스스로 전면적인 국민 저항을 불러들이고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김병준 총리 지명은 현 사태를 보는 박 대통령 인식이 얼마나 안이하고 자기중심적인지를 드러낸다. 박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씨를 총리로 지명하고 ‘대폭 권한을 주겠다’고 하면 야당이 크게 반발하지 못하리라 생각한 듯하다. 검찰이 최순실씨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으니 최씨와 일부 인사를 구속하고 나면 국민 분노를 잠재울 수 있으리라 판단하는 듯하다. 오판도 이런 오판이 있을 수 없다. 지금 국민이 문제 삼는 건 최순실씨가 아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방치한 대통령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국민은 생각한다.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한테선 1년에 한 번도 대면 보고를 제대로 받지 않으면서 수십년 전 사술로 접근했던 최태민씨의 딸 순실씨와는 수시로 국정을 협의하는 대통령이 과연 정상적인가 근본적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렇기에 야당뿐 아니라 새누리당 일부에서도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 떼고 2선으로 물러나는 방식’의 거국내각을 주장했다.
그나마 정치권이니까 이 정도 얘기라도 하는 것이다. 거리의 민심은 훨씬 험악하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절반 이상이 ‘대통령 탄핵 또는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 다수는 박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 자격도, 능력도 없다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론을 수렴하기는커녕 여야 지도자들과 단 한 번 협의도 없이 덜컥 ‘김병준 총리’를 지명하다니, 국민의 뜻을 따를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1987년 온 국민의 개헌 열망을 ‘호헌 선언’으로 누르려다 6월 민주항쟁을 불러온 전두환 정권처럼, 가뜩이나 분노한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청와대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참여정부 인사를 총리로 지명했으니 사실상의 거국중립내각”이라고 주장하는데 소가 웃을 노릇이다. 민심을 거스르며 일방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가 독립적이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 수는 없다. 김병준씨는 무슨 생각으로 총리직을 수락했는지 모르나, 이런 총리는 박 대통령의 일시적인 방탄조끼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박 대통령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럴수록 민심의 이반과 분노만 커질 뿐이다. 지금이라도 총리 지명을 철회하고 여야 정치권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항거를 스스로 불러들이는 잘못된 행동을 하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