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가 정권 초기부터 부속실 차를 타고 청와대를 무시로 드나들었다는 <한겨레> 보도는 충격적이다. 가장 보안이 철저해야 할 대통령실이 최소한의 신원 확인 절차도 없이 일반인에게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호 수칙에 따라 최씨 차를 검문하려던 경찰 간부들이 최씨의 미움을 사 좌천됐다는 얘기엔 할 말을 잃게 된다. ‘비선 실세’에 의해 청와대 경호 기능마저 이렇게 무참하게 무너진 사례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도 보기 힘들 것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선 대통령의 신변 안전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매년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경호 업무에 투입한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청와대 경내는 경호실이 맡지만 외곽 경비는 경찰이 담당하고, 주변 산악지대엔 군부대가 상시 주둔하고 있다. 대통령 행사 때마다 현장에선 수많은 시민이 검문검색을 받고, 대통령의 이동 경로는 교통 통제를 하는 게 기본이다. 시민들이 숱한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그걸 용인하는 건 대통령 안전이 중요하다는 공감 때문일 것이다.
일반인 최순실씨가 경호 원칙을 싹 무시한 채 청와대를 맘대로 드나들었다는 보도에서 커다란 좌절과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선 경찰과 군인들은 밤새워 대통령 주변을 지키느라 애를 쓰는데, 일반인 최순실씨는 신원 확인도 거부한 채 아무 때나 대통령에게 접근할 수 있다면 그게 납득할 수 있는 일인가. 시민들에겐 온갖 불편을 지우면서 정작 자신의 ‘비선 측근’에겐 모든 걸 면제해주는 대통령을 보면서, 과연 그런 대통령에게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신변을 지켜줄 가치가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청와대는 모르쇠로만 일관하고 있다. 정연국 대변인은 “(검찰에서 출입기록 등을 조사하면) 최대한 협조하겠다”고만 말했다. 청와대 스스로 밝히면 될 일을 검찰로 넘겨버리는 비겁한 태도가 국민을 더 화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