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40여년 동안 끈끈하게 이어져온 언니·동생 사이라는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친동생도 범접하기 어려운 청와대 문턱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는 사람이 최씨다. 그 최씨의 비리 혐의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가 아무리 부정해도 이 사건이 전형적인 ‘대통령 측근 비리’임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최순실 비리’가 단순한 의혹 차원을 벗어나 ‘사실 확정’의 단계로 접어든 지도 오래다. 매일같이 비리 혐의가 쏟아져도 관련자들은 일언반구 해명이나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 몸을 꼭꼭 숨긴 채 증거인멸을 하기 바쁘다. 법률적으로 따지면 사실상 ‘자백’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법률전문가의 견해도 나온다. 박 대통령이 아무리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라고 억지를 부려도 진실의 빛을 가릴 수는 없다.
‘최순실 게이트’와 청와대의 관계는 한장의 지도가 생생히 설명해준다. 박 대통령의 사저, 최씨의 집,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최씨의 개인회사 더블루케이 사무실이 모두 가까운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더블루의 ‘블루’는 청와대의 ‘블루하우스’에서 따왔고, 심지어 케이스포츠 재단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신원조회를 청와대에 맡겼다는 관련자의 증언마저 나왔다. 민정수석실 개입 여부에 대한 명백한 진상 규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측근이나 가족의 부정·비리 의혹이 불거졌을 때 머리 숙여 국민에게 사과했다.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며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것은 제 불찰”(고 김영삼 대통령), “지금 고개를 들 수 없는 심정”(고 김대중 대통령). 박 대통령이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평생 동생처럼 여겨온 사람이 물의를 일으킨 것은 언니인 나의 허물이며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것은 제 불찰” 정도의 대국민 사과를 해야 옳다.
사실 박 대통령은 이런 사과를 할 자격조차 없는지 모른다.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기는커녕 최씨를 방약무인하게 날뛰게 한 사람이 바로 박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 최씨 눈 밖에 난 공무원들이 순식간에 좌천되고, “이 사람들이 아직도 있어요?”라고 하면 해당 공직자들의 목이 달아나는 상황이 바로 최순실 게이트의 독버섯이 자라난 온상이었다. 이번 사안이 박 대통령의 단순한 사과나 엄중한 수사 지시 정도로 끝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