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으로 떠돌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보여주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회의록이 공개됐다. 이 정부 들어서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으며 현실 비판적인 예술인들이 무대를 빼앗기고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는데, 정부 차원에서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인 솎아내기를 해왔음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지난해 5월29일치 문화예술위 회의록을 보면 권영빈 당시 예술위원장이 ‘기금 지원을 해줄 수 없는 리스트가 있다’, ‘지원 심의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돼 있다’, ‘책임 심의위원을 선정하면 해당 기관에서 신상을 파악해 결정한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나온다. 또 지난해 11월6일치 회의록에는 ‘청와대에서 배제해 심사위원 추천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발언까지 기록돼 있다. 예술인 블랙리스트가 있고 심의위원 선정도 자체적으로 할 수 없으며 청와대가 개입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연출가 박근형의 연극 작품이 예술위 지원사업에 선정됐지만 ‘2013년 연출작 <개구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빗댔다’는 이유로 예술위로부터 신청 포기를 종용받았고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 지난해 10월에는 박근형 연출의 음악극 <소월산천>이 연출가 배제를 요구하는 국립국악원과 마찰을 빚다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다. 당시 박근형씨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작품이 찍힌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니다. 현 정부 고위직을 지낸 인사도 블랙리스트 명단이 1만명을 넘어간다는 말을 들었다고 공개한 바 있다.
부패·추문으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닌 마당에 문화예술계에까지 유신독재 망령 같은 블랙리스트가 나돌고 있다니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이 정권의 속성상 또 모르쇠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야당은 끝까지 추궁해 책임자를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