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고압 물대포에 맞아 끝내 숨진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영장이 결국 발부됐다. 경찰은 부검을 강행할 태세지만, 그래선 안 될 일이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경찰의 물대포 때문이라는 증거는 굳이 부검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하다. 그런데도 부검을 강행한다면 불순한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백남기 농민의 사인은 명백하다.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경찰의 살수차가 예순아홉살인 그를 향해 경찰 내부지침의 기준조차 어기고 고압의 물대포를 직사 발사한 사실은 당시의 비디오 영상과 경찰 자체 기록으로 확인된 터다.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직후 ‘외부 충격에 의한 두개골 골절’과 그런 외상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뇌경막하 출혈’로 이미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생명이 위태로웠음을 보여주는 영상자료 등 병원 기록도 있다. 1년 가까운 입원 기간 동안 거친 숱한 검사와 진료를 통해 경찰의 국가폭력 때문에 결국 사망에 이르렀음은 이미 흔들릴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해졌다. 그런데도 굳이 부검을 하겠다니 대체 무엇을 밝히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법원이 영장 청구를 한차례 기각하고 경찰의 재청구에도 ‘유족들과의 협의’ 등을 조건으로 영장을 발부한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겠다. 법원이 유족의 의사를 확인해 유족 뜻에 따르도록 여러 조건을 단 것은, 유족과 제대로 협의하지 않은 채 영장을 집행해선 안 된다는 분명한 뜻이다. 그런 협의 없는 강제집행은 객관적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부적법한 집행이 된다. 유족들은 29일 부검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도 부검을 강행하면 괜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이고, 위법의 혐의를 받을 수도 있다.
경찰은 왜 이렇게나 강제 부검에 집착하는지 짐작 못 할 바는 아니다. 부검을 통해 어떻게든 경찰의 법적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책임을 모면한 전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더 나아가 경찰이 가공의 가해자에게 엉뚱한 책임을 돌리려 한다는 의심도 많다. 경찰 등 정권 일부에서 은근히 그런 말을 흘리기도 했다.
유족들이 반대하는 부검 시도는 즉각 멈춰야 한다. 경찰의 잘못이 명백한 터에 가해자 격인 경찰이 수사를 맡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특별검사 등을 통해 철저하게 수사하는 것이 옳다. 정부 당국자의 책임 있는 사과도 당연하다.
[사설] 불순한 부검 시도로 평지풍파 만들지 말라
- 수정 2016-09-29 18:21
- 등록 2016-09-29 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