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가 문을 열면서 개헌이 정치권 최대 화두의 하나로 등장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을 필두로 여야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개헌에 대한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개헌의 구체적인 방향과 범위, 시기 등에 대한 의견은 물론 제각각이다. 따라서 개헌 논의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좀더 지켜볼 대목이다. 다만 개헌을 추진한다면 몇가지 전제조건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첫째, 국민의 공감대 형성이 최우선이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7명 정도가 개헌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국민이 개헌의 필요성을 얼마나 절박하게 느끼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정치인들이 앞장서는 개헌 논의를 불신의 눈으로 시큰둥하게 바라보는 정서도 광범위하다. 따라서 정치권은 개헌 논의의 진정성을 국민에게 설득하고 동의를 얻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개헌을 통해 구현하려는 가치가 무엇인지, 개헌이 우리 사회의 틀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등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시민사회나 학계도 개헌 논의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성이 있다.
둘째, 바뀌는 헌법은 단순히 권력구조 개편 차원을 넘어서 시대 변화에 걸맞은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시민의 기본권 강화, 통일과 영토 조항 수정, 경제민주화, 소수자 보호,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생태복지사회 확립 등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우리의 미래 가치를 담아야 한다. 이런 전면적 개헌을 시도했다가는 나라 전체가 소용돌이에 빠지고 시간만 끌다가 개헌 자체가 무산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순차적 개헌론’도 나온다. 하지만 헌법 개정의 근본 목적이 한국 사회의 근본적 틀을 바꾸는 데 있고, 앞으로 다시 개헌 기회를 잡기 쉽지 않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권력구조 개편의 방향도 단지 정부형태론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거시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을 놓고 백가쟁명식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모두 장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다. 4년 중임제의 경우 과연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에 적합한지 회의적이다. 또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과 총리 간의 상존하는 갈등 가능성의 문제점을 안고 있고, 의원내각제 역시 국민 정서 외면이라는 높은 벽을 넘어야 한다. 이런 정부 형태 중 하나를 선택한다고 해서 우리의 정치문화가 하루아침에 혁신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따라서 정부 형태 고르기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중앙정부와 의회, 사법부, 지방정부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통치구조 전반에서 실질적 분권, 상호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도록 접근할 필요가 있다.
넷째, 가장 중요한 점은 정치권이 정략적·당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당장 눈앞의 정치적 이익에 매몰된 개헌은 국민이 용납하지도 않거니와 현실적 합의에 이르기도 어렵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새롭게 설계하겠다는 자세가 없으면 아예 개헌을 추진하지 않는 편이 낫다. 덧붙여, 이제는 청와대도 개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시점이 됐다. ‘블랙홀’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도, ‘국회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의 태도도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개헌에 좀더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다만 집권 연장 등의 정략적 목적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