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제1211차 수요집회가 열렸다. 1992년 1월8일에 시작돼 24년 가까운 세월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온 집회다. 그러나 그 기나긴 세월의 싸움의 결과는 참으로 허무하다. 한·일 양국이 발표한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 결과는 할머니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주기는커녕 커다란 돌덩어리를 하나 더 얹어 버렸다. “정부당국이 피해자들을 두번 세번 죽이고 있다.” 집회에서 터져나온 할머니들의 눈물 젖은 절규와 분노는 대다수 국민의 것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은 위안부 문제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만약 협상 타결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 협상의 현실적 어려움을 설명하고 충심으로 양해를 구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하지만 이런 가정은 무의미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은 고사하고 이 정부의 어느 누구도 사전에 할머니들을 만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정작 피해자들은 철저히 배제해버린 것이다.
정부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연휴 기간에 협상이 급진전되는 바람에 충분히 설명할 여유가 없었다”(임성남 외교부 1차관)고 변명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그 기나긴 세월을 피 흘리며 싸워온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고작 ‘연휴 사흘’을 변명이랍시고 들이대는 것이 이 정부 관료들의 사고 구조다. 사실 이 정부 사람들에게는 애초부터 피해자들은 안중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할머니들한테는 한마디 귀띔조차 해주지 않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따위의 문구에 합의할 수는 결코 없는 법이다.
그동안 일본의 우익단체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향해 “돈에 미쳐 있다”는 따위의 입에 담기 힘든 욕설로 깊은 모욕과 상처를 주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정부는 할머니들에게 일본 쪽의 하나 마나 한 사과에 만족하고 대신 ‘돈’을 받고 그냥 물러서라고 종용하는 모양새가 됐다. 그것은 정부가 내세우는 명예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명예에 먹칠을 하는 꼴임을 정부는 전혀 모르는 듯하다.
이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집회 광경을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는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소녀상은 점차 애물단지가 돼가는 듯하다. 할머니들의 신세도 그 소녀를 닮아가는 것만 같은 슬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