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수백명의 경찰들은 평범한 시골마을을 에워싸고 있고, 마을 주민들은 죽기살기로 경찰에 맞선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구부정한 노인네들이 건장한 청년들을 무슨 힘으로 이겨내겠는가. 경찰을 막아내다 여기저기서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넘어져 머리가 깨지고, 사지가 들려서 질질 끌려나간다. 765㎸의 고압 송전탑 건설 공사가 강행되고 있는 경남 밀양의 새해 벽두 모습이다.
한전이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지 8일로 100일이 됐다. 그사이 마을 주민 한 명이 음독자살하고, 또 한 명이 자살을 기도했다. 그야말로 목숨 걸고 송전탑 건설을 막아보려 하지만 정부와 한전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전은 9일 송전탑 두 곳에 대한 공사를 추가로 시작함으로써 공사 현장은 밀양시 4개면의 전체 송전탑 52개 가운데 26곳으로 늘었다.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대화로 풀어가자고 하지만 정부와 한전은 대화 시늉만 할 뿐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불통도 이런 불통이 없다.
그러는 사이 마을 공동체는 해체되고 주민들의 몸과 마음은 한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올해 초 밀양시 4개면 주민 317명을 대상으로 정신심리검사를 한 결과, 10명 중 1명이 ‘기회만 있으면 자살하겠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주민 대다수는 우울증과 불안증세를 보이고 있다. 송전탑 건설로 시골 주민들의 삶이 완전히 망가져 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국가적인 공공사업을 시행한다고 하지만 국민들의 삶을 이렇게 철저히 짓밟으면서 밀어붙여도 되는 것인가.
정부와 한전은 힘없는 시골 주민들을 희생시켜 가며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는 야만적인 행태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그동안 밀양은 경찰과 주민 사이의 충돌로 부상자가 속출하고 수십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등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인권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부끄러운 모습들이다. 설사 송전탑 건설이 불가피하다 해도 민주국가라면 이런 식으로 밀어붙여선 안 된다. 아무리 어렵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찾은 뒤 공사를 진행하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사설] 더 이상 밀양을 아프게 하지 말라
- 수정 2014-01-09 18:38
- 등록 2014-01-09 1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