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베트남을 국빈방문하고 있다. 7일부터 11일까지 무려 4박5일간의 긴 일정이다. 베트남은 미국, 중국, 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열린 러시아에 이어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방문한 네 번째 나라다. 박 대통령이 주변 4강국 외에 베트남을 얼마나 전략적으로 중시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1992년 수교 이래 정치·경제·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6년 대통령으로 처음 방문한 이래 김대중(1998), 노무현(2004), 이명박(2009) 등 역대 대통령이 재임 중 빠짐없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두 나라를 규정하는 관계도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 번째로 2009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격상되었다. 우리나라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의 수도 현재 3만9000여명으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박 대통령의 국빈방문은 두 나라의 협력과 유대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베트남 사이에는 ‘큰 숙제’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우리나라 군의 베트남전 참전과 양민학살 문제이다. 베트남 정부가 수교를 하면서 ‘승전국으로서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자세를 보였다지만,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니다. 베트남전 당시 격전지였던 중부지역 곳곳에 한국군 증오 위령비들이 아직도 즐비하게 서 있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마치 우리나라와 일본이 1965년 맺은 청구권협정이 아직도 과거사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탓에 김대중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 당시 호찌민 묘소에 헌화하고 정상회담에서 “베트남 국민에게 본의 아니게 고통을 준 데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고, 노 대통령은 호찌민 묘소를 헌화·참배하고 “우리 국민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더욱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보수 성향의 이 대통령은 헌화만 하고 “베트남이 역경을 딛고 아픈 과거를 딛고 미래를 향해 가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고 하는 데 그쳤다.
박 대통령은 9일 오전 호찌민 묘소에 헌화만 하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상회담에서는 원자력 수출과 자유무역협정 체결 등 세일즈 외교에만 주력했다. 굳이 그쪽에서 요구하지도 않는데 사과를 되풀이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도 있지만, 이는 우리가 일본에 역사 직시를 요구하는 것과 모순된다. 내가 본 피해는 시정을 촉구하면서 내가 입힌 가해는 모른 척하는 자세로는 어느 누구의 마음도 진정으로 얻을 수 없다.
[사설] 일본엔 역사 직시하라며 베트남엔 침묵하는 모순
- 수정 2013-09-09 18:33
- 등록 2013-09-09 1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