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한 뒤 헌재 내부는 물론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일제히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 지명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깊게 협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박 당선인의 인사 안목을 둘러싼 의구심도 더욱 깊게 일고 있다. 피케이 출신 대법원장에 티케이 출신 헌재소장이라는 사법 수뇌부의 영남 편중도 문제지만, 이 후보자의 성향이 너무 편향적이어서 심각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법원과 헌재에 있으면서 보인 몇가지 부적절한 처신을 두고서도 말들이 많다. 일반 여론이나 상식과 너무나 동떨어져 ‘최악의 선택’이란 평가까지 나오는 만큼 국회 임명동의 또는 그 전 단계에서라도 반드시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후보자가 헌재 재판관으로서 해온 판단들을 보면 재판관 자격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헌법적 가치에 대한 몰이해와 편향성이 두드러진다. 2011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에 대해 정부가 해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침해’에 해당해 위헌이라고 헌재가 결정할 때, 이 후보자는 “고도의 정치행위 영역”이라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냈다. 같은해 3월 친일재산 환수에 대해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의 정신에 비춰 합헌이라고 결정했을 때도, “친일과 무관한 재산까지 박탈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등의 이유로 일부 위헌 주장을 폈다.
뿐만 아니라 헌법상 표현의 자유나 집회·시위의 자유를 둘러싼 사건에서도 대부분 개인의 헌법상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는 쪽으로 소수의견을 냈다. 이른바 ‘미네르바 사건’으로 불리는 전기통신기본법의 허위통신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이라는 다수의견과 달리 “국가 공공질서의 교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며 합헌 주장을 폈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서울광장에서 열린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조항에 대한 위헌제청 사건이나, 경찰 버스로 서울광장을 둘러싸 집회를 막았던 ‘차벽 봉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도 다수의견과 달리 합헌 의견을 냈다.
업무 태도와 처신도 논란거리다. 2011년 6월 헌재 재판관 시절 국비로 보름간 프랑스를 방문하면서 현지에 머물던 가족과 동반여행을 하는가 하면 출판과 강연 등 개인적인 일에 헌법연구관들을 동원하는 등 공사 구분이 불분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법원과 헌재 구성의 다양성이 무너지고 보수편향이 강화됐다는 비판이 많은 판에 설상가상으로 이처럼 성향과 출신지, 자질 면에서 모두 부적절한 인사를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 가치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헌재 소장에 지명한 것은 경악할 만한 일이다. 헌재에 근무했던 인사가 이 후보자를 ‘법조계의 조갑제’라고 했다는 인물평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더구나 박 당선인이 이런 인사에 깊게 개입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윤창중 대변인 인사로 그렇게 비판이 쇄도했는데 다시 비슷한 패턴의 인사를 되풀이했다는 점에서 말문이 막힌다. 앞으로 국민대통합이니 대탕평이니 하는 최소한의 명분도 내던지겠다는 생각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헌재의 체면과 위신을 위해서라도 이 후보자 스스로 용퇴하거나 지명이 철회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