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이 복지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재원 조달을 위해 불가피한 증세에 대해서는 말꼬리를 흐리고 있다. 대선이 두 달 앞인데 변죽만 울리거나 표심을 떠보다가 발을 빼는 것은 떳떳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만에 가깝다. 후보들은 유권자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복지공약에 필요한 재원 조달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 캠프의 유민영 대변인은 어제 “비과세·감면 축소 등을 통해 세수를 최대한 확보한 뒤에도 추가 세수가 필요하다면 증세를 고려하되, 철저한 국민적 합의 아래 추진하겠다”며 보편적 증세 방침에서 한발 물러섰다. 앞서 새누리당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부가가치세는 35년간 10%의 세율이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상태”라며 부가세 인상을 시사했다가 논란이 불거지자 하루 만에 철회했다. 부자증세를 내세우고 있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쪽도 경제 상황을 고려해 세금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당내 의견이 상당하다고 한다.
지난 4월 총선 당시 여야는 복지공약을 이행하는 데 연간 15조원(새누리당)~33조원(민주통합당)이 추가로 소요된다고 밝힌 바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복지공약을 이행하는 데 추가로 필요한 비용이 해마다 50조~100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새누리당은 지출을 효율화하고 세원 확대와 비과세·감면 축소로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하나 현실성이 떨어진다. 비과세·감면이라는 게 농민, 영세업자, 중소기업 등 이익집단이 줄줄이 걸려 있어 줄이는 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 안대로 소득세 과표 조정과 법인세율 인상을 통해 부자증세를 해도 연간 세수확대 효과는 5조원에도 못 미친다.
대선 후보들이 증세에 대해 어물어물하는 이유는 뻔하다. 여론의 역풍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촛불시위와 무상급식이 쟁점이 됐던 2010년 서울시장 선거를 돌아보면 증세 논쟁이 불리하다는 정치권의 판단과 달리 시민들의 의식에는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경향신문> 창간 66주년 여론조사에서도 “복지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부담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절반 이상의 응답자(55.2%)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지금과 같은 저부담·저복지 구조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생각보다 확산되고 있음을 뜻한다.
복지국가를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며, 이번 대선을 통해 증세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 방향은 부자증세를 기본으로 하되 복지를 위해 형편껏 재원 조달에 참여하는 보편증세가 함께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