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안이 어제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부결됐다. 국력 낭비를 초래한 소모적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원안 추진에 마땅히 매진할 때다. 그런데 청와대와 친이명박계는 국회 본회의를 통해 불씨를 되살려보겠다는 꼼수를 꿈꾸고 있으니 집권세력으로서의 기본 자세마저 의심된다.
그동안 세종시 수정안 추진 과정은 국정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려도 되는 거냐라는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이명박 대통령은 법률에 따라 부과된 원안 추진 의무를 소홀히 해 법의 안정성을 흔들었다. 자신의 입으로 20차례나 천명했던 원안 추진 공약을 뒤집는 과정에서 국정에 대한 신뢰는 산산이 무너져내렸다. 수정안을 만드는 과정은 편법과 무원칙의 극치였다. 전문가들의 토론과 검증을 거쳐 마련한 정책 대안들이 하루아침에 폐기되고, 대신에 특혜 시비와 뒷거래 의혹마저 불러일으키는 눈속임 처방들이 동원됐다. 그동안의 과정은 빗나간 국정 행태의 백화점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쯤 되면 이 대통령은 국정방향을 잘못 판단해 혼란을 초래한 데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게 마땅하다. 정운찬 국무총리 등 그릇된 방향으로 국정을 보좌한 인사들도 뒤로 물러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전 대상 행정기관 지정·고시와 예산 반영 등 원안 추진에 필요한 일을 지금이라도 서둘러 챙겨야 한다. 그것이 불필요한 갈등에서 비롯된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친이계는 부결된 수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다시 부의하겠다고 한다. 6월 임시국회에는 부의만 해뒀다가 8월 임시국회 또는 9월 정기국회 때 표결을 시도하리라는 말도 나온다. 도대체 무엇을 노리는지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친박 세력 괴롭히기, 친박 및 야당세력의 분열과 7·28 재보선 이후 여론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심리 따위가 엿보인다. 여전히 요행수나 바라고 국정의 순리보다는 정적들을 괴롭히고 보자는 정쟁 발상에 머물고 있으니 정말 답답하다.
이들은 본회의 부의 이유로 역사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역사에 남겨야 할 것은 국회 본회의 표결 기록이 아니라 대통령의 통절한 사과다. 집권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국정 안정성이 흔들리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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