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0주년을 맞아, 국내외 여러 곳에서 추념식 등 기념행사가 다채롭게 열렸다. 서울에서는 유족과 정운찬 총리 등 정부 인사 및 광복회원 등이 참석하는 중앙추념식이 열렸고, 안 의사가 숨진 뤼순감옥에서는 남북이 공동추모식을 열었다.
그러나 각종 기념행사가 펼쳐지는데도 마음 한쪽에서 이는 부끄러움을 누르기 어렵다. 안 의사가 민족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침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형장에서 숨진 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유해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안 의사에 관한 기록을 갖고 있는 일본, 그리고 유해가 매장돼 있는 중국과 적극 협력해 이른 시일 안에 유해를 발굴·봉안해 국민들이 더는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안 의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단순히 민족독립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안 의사가 일본에 맞서 독립운동을 펼치고 나아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바탕에는 인류의 평등과 공존을 추구하는 평화사상이 있다.
그는 <동양평화론> 서문에서 “오늘날 세계는 동서로 갈라지고, 인종이 각각 다르며, 서로 경쟁하기를 밥 먹듯 한다. …젊은 청년들을 훈련시켜 전쟁터에 몰아넣어 수없는 귀중한 생령들이 희생물처럼 버려져, 피가 내가 되어 흐르고 주검은 산을 이룬다”며 제국주의 각축이 낳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는 이런 서세동점의 환란의 시기엔 “동양 사람이 일치단결해서 방어함이 최상책”임에도 일본은 이러한 대세를 못 보고 오히려 중국과 한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을 도모하니 “동양평화를 위해 의로운 전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토를 사살한 이유를 밝혔다.
이런 그의 동양평화론은 1세기가 지난 오늘의 현실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자본주의적 각축은 더욱 극심해졌고 반세기 이상 지속된 민족의 분단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부쩍 동아시아공동체론이 활기를 띠는 것은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안 의사를 장군으로 부르는 것은 동양평화를 위한 그의 의거의 의미를 민족주의적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 안 의사를 기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에 대한 그의 신념을 계승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