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발표된 이라크연구그룹의 보고서는 네오콘이 주도한 미국의 일방적 대외정책에 대한 파산선고에 다름 아니다. 연구그룹을 주도한 제임스 베이커 2세는 보고서 전문에서 “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좀더 솔직해야 한다”며 이라크 상황은 엄중할 뿐만 아니라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미군이 자체 군사력만 가지고 이라크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고 인정하고, 이라크를 안정시키고 이 지역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국제지원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한사코 거부해온 이란 및 시리아와 직접 대화를 촉구하고 이라크 문제 해결 과정에 그들을 동참시킬 것을 권고했다.
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네오콘 이론가 윌리엄 크리스톨이 왜 이를 ‘위장된 항복문서’라고 비판했는지 이해가 된다. 보고서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민주주의 확산’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 이라크 정부나 이라크군이 미국의 도움 없이 통치하거나 지탱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군사고문단을 증파해 이라크군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미국은 2008년 초부터 전투부대를 철수시키라고 촉구하고 있다. 어떤 군사전문가도 1~2년 안에 이라크군이 스스로의 안보를 책임질 수 있으리라고 보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미국의 패퇴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결국 미국은 수십만명의 이라크인들과 수천명의 미군 병사를 희생시키고도 ‘민주주의의 확산’이란 허울좋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이라크를 가망없는 내전 상태에 빠뜨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부시 대통령은 냉전 해체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국으로 등장한 미국이 왜 이런 수모를 겪게 됐는지는 철저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베트남전 패배의 교훈을 잊은 네오콘의 오만한 일방주의가 최강국의 도덕적 권위를 상실하게 만들어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었음을 인정해야만 새로운 길이 열린다. 보고서의 기본취지 수용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란·시리아 등과 관계개선을 통해 이스라엘 일변도인 중동정책을 바로잡고 북한에 대한 체제 전복 위협도 중단해야 한다. 미국 지도자들은 자국민뿐 아니라 세계 시민들에게도 좀더 솔직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