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일 부산 해운대구 지원 유세에서 “우리 정부가 여러분 눈높이에 부족한 게 있지만 그 책임이 저한테 있지는 않지 않으냐”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소통령’으로 불렸던 실세 중 실세였다. 법무부 장관에서 곧바로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사실상 윤 대통령이 내리꽂을 만큼 심복이자 복심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내게 뭔 잘못이 있느냐며 책임을 회피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뻔뻔함과 무책임이 또 있었나 싶다.
지금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전횡에 대한 심판 민심이 거세다는 사실은 온 국민이 체감하고 있다. ‘부산의 강남’으로 불리는 해운대구 역시 과거 여당 공천만 받으면 말뚝을 꽂아도 당선된다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윤 대통령의 최측근인 주진우 전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이 해운대갑에 공천되고도 야당 후보와 오차범위 내 경합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판국이다. 한 위원장의 ‘정부 부족함’ 발언도 이런 민심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누구도 아닌 한 위원장이 정부 잘못이 자신의 책임은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을 어느 누가 수긍할 수 있겠나. 한 위원장은 검찰 수사지휘권을 쥔 법무부 장관으로서 김건희 여사의 각종 의혹에 대해 감싸기로 일관했다. 반면 야당과 전 정권에 대해선 불법적 피의 사실 공표에 가까운 내용을 공개 발설하며 정치 공세에 앞장섰다. 인사 검증권도 휘둘렀지만, 수없이 반복된 인사 참사를 막지 못했다. 현 정권이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린 끝에 심판의 대상으로 전락하기까지 한 위원장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오죽하면 여권에서도 “법무부 장관을 했으니 책임이 크다”(홍준표 대구시장)는 비판이 나오겠나.
여당 비대위원장이 된 뒤도 마찬가지다. 한번이라도 윤 대통령의 독선과 불통에 대해 제대로 견제하고 바꾸려 한 적이 있는지 스스로를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건희 특검법’부터 명품 백 추문, 이종섭 도피극까지 늘 대통령 눈치를 보며 모호한 말로 줄타기를 하다가 결국 대통령 격노에 고개를 숙이는 행태를 반복하지 않았나.
이번에도 ‘정부 부족함’을 거론하고 하루 만인 2일 “최근 선거 관련해서 누가 탈당을 해야 되느니 하는 거친 말들을 하는 분들이 있다”며 다시 대통령을 옹호하고 나섰다. 또 눈치를 보는 것이다. 책임론에 대해서도 “부족한 게 있으면 다 제 책임”이라며 하루 만에 거둬들였지만, 뭐가 부족하고 뭘 책임지겠다는 건지가 없어 공허할 뿐이다. 책임 회피와 말바꾸기, 이제 그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