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023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을 참관하며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훈련상황에 대해 묻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023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을 참관하며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훈련상황에 대해 묻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피의자 신분으로 주요국 공관장에 임명돼 큰 파문을 일으킨 이종섭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대사가 29일 사임했다. ‘수사 회피’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사에 임명된 지 25일 만이다.

이 대사는 이날 오전 자신의 변호인을 통해 사의 표명 사실을 알렸다. 외교부는 임명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해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날까지도 임명 철회 가능성을 일축하던 정부 태도가 급변한 건 여당의 총선 패배 위기감 때문이다. 이 대사가 급조된 공관장 회의 참석을 핑계로 조기 귀국했음에도 민심이 들끓자 ‘악재’ 해소 차원에서 거취를 정리한 것이라고 본다.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 “민심 순응” 운운하며 과대 포장에 나섰다. 그러나 이 대사 임명을 둘러싼 의문은 하나도 해소된 게 없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에 연루된 핵심 피의자를 대사로 발탁한 것부터가 인사 관례와 상식에 어긋난다. 정부는 “방산 협력을 위해서”라고 했으나, 왜 굳이 국방부 장관 출신이어야 하는지, 굳이 피의자를 임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제대로 답변한 적이 없다. 이 대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출국금지 대상임에도 4시간 약식 조사만 받고, 법무부가 서둘러 출금을 해제하자마자 곧바로 출국했다. 쫓기듯 허겁지겁 임명하고 내보낸 것이다. 주재국에 제출해야 하는 신임장조차 복사본을 들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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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사는 보통 피의자가 아니다. 국방부 장관 시절 경찰에 넘긴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관련 기록 회수를 지시하는 등 조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를 받고 있다. 자신이 결재한 것을 갑자기 번복한 것이다. 이런 지시를 하기 직전 대통령실 유선전화를 받은 사실도 이미 드러났다. 국방부 장관에게 그런 지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나. 이 대사 졸속 임명이 ‘도피성 출국’이란 의혹을 살 수밖에 없는 근본 이유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이날 이 대사의 사의만 수용했을 뿐, 그간의 자초지종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다. 이미 국민적 의혹으로 더 키운 이 사안이 침묵한다고 없어지나. 또 25일 만의 대사 교체를 호주에는 뭐라고 설명할 텐가. 유례없는 외교적 결례가 아닐 수 없다. 당장 5월 말로 잡혀 있는 ‘한-호주 외교·국방 2+2 회의’ 준비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이 모든 사달은 윤 대통령 스스로 만든 것이다. 대사 사퇴로 얼버무리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직접 임명에서 사퇴에 이르는 저간의 과정을 설명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마땅하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