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앞세운 ‘대만 독립의 아이콘’ 라이칭더 민주진보당(민진당) 후보가 승리했다. 이번 선거 기간 중국은 서태평양에서 사상 최대 규모 군사 훈련을 벌이고 푸젠성과 대만을 묶는 통합 경제발전 계획을 발표하는 등 강온 양면의 영향력 행사에 나섰지만, 강고한 반중 민심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라이 당선자는 “대만 주권은 중국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온 대표적 대만 독립파 정치인이다. 대만 독립과 민주주의를 핵심 가치로 삼는 민진당 주류 신조류파의 적자로 불린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부한 차이잉원 현 총통보다도 더 위험한 인물로 평가한다. 그런 라이 당선자도 이번 선거에선 ‘대만 독립’을 직접 목표로 내거는 대신 ‘현상 유지’를 강조했다. 당선 인사에서도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는 총통으로서 주요 사명”이라고 했다. 미국도 라이 당선을 반기면서도 “우리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조 바이든 대통령)고 선을 그었다. 유럽과 중동에서 두개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동아시아의 추가적 긴장 고조를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만 라이 당선자는 “대만은 계속 세계 민주주의 동맹국들과 동행할 것”이라며 중국과 맞서는 길을 걷겠다는 뜻 또한 분명히 했다. 중국이 이를 중국 봉쇄 강화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긴장은 더욱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라이 당선자가 신중하고 지혜롭게 정세 관리에 임하기 바란다.
중국은 공식 반응 첫 구절에서 “민진당이 주류 여론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라이 당선자 득표율(40.05%)이 절반에 미달했다는 점을 깎아내렸다. 그나마 날 선 위협적 언사를 내놓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앞서 중국은 선거 기간 연일 군함과 군용기를 대만 인근에 보내 무력시위를 벌이며 “전쟁과 평화 중에 선택하라”고 압박했다. 노골적 선거 개입이자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다. 그러나 이런 강압적 행태로는 대만 국민의 반중 정서만 더 키울 뿐이다. 중국은 민주화 시위를 무력 진압해 홍콩 시민의 마음을 대거 돌려세운 전력도 있다. 진정 평화와 통일을 바란다면, 더는 잘못된 전철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외교도 더 거친 시험대에 서게 됐다. 대만이 반도체 역량을 무기로 미-일 동맹과 밀착할수록 한국의 동참을 요구하는 압력도 커질 수 있다. 자칫 한-중 관계 후퇴로 우리 국익이 훼손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치밀한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